[조선일보 사설 분석] 與 ‘막말’ 지적에 주진우 “진짜 막말은 이재명 부부 욕설”

주진우 의원이 자신의 SNS에 “이재명을 끊을 때”라는 댓글을 단 것은 지난주의 일이다. 현직 대통령을 지칭한 발언이다. 민주당이 이를 문제 삼자, 주 의원은 즉각 반격했다. “진짜 막말은 이재명 부부 욕설”이라고. 조선일보는 이 장면을 거의 그대로 받아 사설에 담았다.

그리고 제목은 “막말 공방”이었다.


“공방”이라는 단어에는 전제가 숨어 있다. 양쪽이 서로 비슷한 수위로 싸우고 있다는 것. 독자는 “공방”이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자동으로 양비론의 틀 안에 들어간다. 누가 먼저 어떤 말을 했는지, 그 말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는 흐릿해진다. 조선일보가 굳이 따져 물을 필요가 없어진다. 프레임이 알아서 일을 한다.

“이재명을 끊을 때”라는 표현 자체는 해석의 여지가 있다. 이재명 정책이나 노선과의 결별을 촉구한 것인지, 아니면 대통령 개인을 향한 좀 더 직접적인 표현인지. 주 의원 측은 전자라고 할 것이다. 그 해석을 전면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주 의원이 선택한 응수가 문제다. 해석의 여지를 설명하는 대신, “이재명 부부 욕설 모음이나 틀겠다”는 반격을 택했다. 이건 해명이 아니다. 주제를 바꾸는 것이다. 자신의 발언 수위를 해명해야 할 자리에서, 상대방의 과거 발언을 끌어들여 논점을 교체한다. 이 교체가 성공하면, 원래 문제는 “양쪽 다 막말을 했다”는 인식 속에 묻힌다.

조선일보 사설은 바로 그 교체된 지점을 시작점으로 삼았다.

물타기의 구조

물타기는 단순히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과 사실을 병렬로 놓아서, 맥락을 지우는 기술이다. “이재명 부부가 욕설을 했다”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주진우 의원의 이번 발언에 대한 적절한 해명이 되지는 않는다. A의 잘못과 B의 잘못은 별개의 사건이고, 별개의 기준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하지만 두 사건을 한 문장 안에 나란히 놓는 순간, 독자의 뇌는 둘을 저울질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저울질이 시작되면, 상대적으로 더 나쁜 쪽이 지목되면서 나머지는 면죄를 받는다.

이것이 조선일보 사설이 작동하는 방식이었다.

사설은 민주당의 문제 제기를 “공세”로 명명하고, 주 의원의 반격을 “맞받아침”으로 묘사했다. 중립적으로 보이는 언어들이다. 그러나 “공세”라는 단어는 민주당이 먼저 싸움을 걸었다는 인상을 심고, “맞받아침”은 주 의원의 발언을 정당방위처럼 포장한다. 사건의 시작이 뒤집히는 것이다. 이재명을 겨냥한 발언이 출발점이었는데, 그 발언을 문제 삼은 민주당이 도리어 공세를 취한 쪽이 되어버린다.

사설 한 편에서 이 정도의 구조가 작동한다면, 이건 보도 실수가 아니다.


조선일보가 이 방식을 오래 써왔다는 점을 짚어야 한다. 야당 인사의 발언이 논란이 될 때마다, 여당의 유사 사례를 병렬로 가져와 “이쪽도 했다”는 구도를 만드는 것. 이 패턴이 반복될수록, 독자는 어느 쪽도 믿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정치에 대한 불신이 깊어질수록, 현 체제에 도전하는 세력보다 현 체제를 유지하려는 세력이 유리해진다는 정치학의 오래된 관찰이 있다. 냉소의 수혜자는 대체로 기득권이다.

한 가지 반론은 들을 만하다. 민주당 역시 야당 시절, 여당 발언에서 논란을 찾아 공세를 폈다. 지금의 구도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여야 모두 유리한 프레임을 선택하고, 불리한 맥락은 지운다. 그렇다면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이 글도 결국 프레임 싸움의 일부가 아닌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프레임이 같은 무게를 갖지는 않는다. 어떤 프레임은 발언자에게 책임을 묻고, 어떤 프레임은 책임을 흐린다. 전자가 저널리즘에 가깝고, 후자가 선동에 가깝다. 조선일보의 이번 사설은 현직 국회의원의 발언 수위를 검토하는 대신, 그 검토 자체를 “공방”으로 희석시키는 쪽을 택했다. 그 선택의 방향을 물어야 한다.


“이재명을 끊을 때”라는 댓글이 실제로 어떤 의미였는지, 주진우 의원이 직접 설명했다면 이 논란은 여기서 끝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주 의원은 설명 대신 반격을 골랐고, 조선일보는 그 반격을 사설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책임 소재를 따지는 질문이 사라진 자리에, “누가 더 심한 막말을 했나”라는 전혀 다른 질문이 들어섰다.

독자가 그 새로운 질문에 답하느라 바빠지는 동안, 원래의 질문은 조용히 철회된다. 이것이 이번 조선일보 사설의 실질적인 기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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