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 한 줄] 뉴이재명을 곤충으로 비유한 유시민

유시민이 지난주 한 유튜브 방송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관찰 대상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표현은 정중했다. “파브르처럼 관찰하겠다.” 그런데 파브르가 딱정벌레를 관찰했듯, 그는 윤석열의 자기 파괴 과정을 그 시선으로 들여다봤고, 이제 그 렌즈를 이재명에게 들이댄 것이다. 조롱이 아니라는 건 알겠다. 하지만 그 프레임의 무게는 제법 무겁다.

유시민이 제출한 가설은 이렇다. ‘뉴이재명’ 지지층의 스피커들이 진영 내 다른 목소리를 공격할수록, 대통령은 오히려 진영 안에서 고립된다. 진보 진영의 외연이 좁아지고, 결국 이재명 자신에게 부메랑이 된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지지층의 과잉 충성이 역풍을 낳는 사례는 정치사에 드물지 않다. 그걸 근거로 유시민을 단순히 ‘친윤 프레임’으로 묶는 건 과도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가설이라는 데 있다.

유시민은 이 주장을 뒷받침할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어느 여론조사, 어떤 사례, 어떤 데이터도 없었다. “그렇게 될 것”이라는 예측, 아니 더 정확히는 소망의 언어였다. 정치 평론가가 분석이 아닌 저주의 형식으로 발언하는 것과, 평론처럼 포장된 저주를 구분하는 일이 요즘 왜 이리 어렵냐는 생각이 든다.

증거의 기준이 사람마다 달랐다

여기서 유시민의 또 다른 발언이 문제가 된다.

신라젠 주가 조작 의혹과 관련해, 그는 줄곧 “의혹을 제기한 쪽이 증거를 대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건 법리적으로 틀린 말이 아니다. 무죄 추정, 입증 책임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본인의 의혹에 대해서는 그 원칙을 방패로 세운다.

그런데 이재명에 대해서는? 아무런 실증 없이 “고립될 것”이라 단언하고, 지지층의 행동 방식을 문제 삼는다. 한쪽에는 증거 없이 의혹만 제기하지 말라고 하고, 다른 한쪽에는 근거 없이 경고를 날린다.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다. 그리고 그 차이는 꽤 선명하다.

이걸 내로남불이라고 부르는 게 과격한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조국혁신당이 검찰 개혁을 외치면서 내부 절차엔 유독 너그러웠던 행태와, 유시민이 자기 의혹엔 증거주의를 적용하고 남의 정치적 미래엔 근거 없는 예언을 들이미는 행태는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 진보 진영의 내로남불은 보수의 그것보다 덜 위험한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치명적이다. 신뢰를 먹고 사는 진영이 신뢰를 스스로 갉아먹는 일이기 때문이다.

유시민은 한때 이 진영에서 언어를 다듬는 사람이었다. 그가 쓰는 언어의 프레임은 여전히 파급력을 가진다. 그래서 더 문제다. ‘파브르의 관찰’이라는 비유는 중립적 거리감을 연출하지만, 실제로는 현직 대통령을 해부 대상 곤충으로 위치시키는 효과를 낸다. 그 프레임이 보수 언론에 가면 어떤 헤드라인이 되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집을 크게 짓겠다는 사람의 기둥을 뽑는 일이 그 사람을 돕는 것인지, 아닌지. 유시민 정도의 지성이라면 그 답을 모를 리 없다.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아니면 더 이상 그 집의 완공을 원하지 않는 것인지. 그게 지금 내가 유시민에게 갖는 진짜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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