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6월 사설에서 중앙수사청을 “정권 입맛 수사청”이라고 불렀다. 문장 하나가 프레임 전체를 압축한 표현이다. 조선일보의 논리는 이렇다. 중수청이 국가정보원 해킹 의혹 수사는 경찰에 미루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수사는 손수 챙기고 있으니 이것이 곧 권력을 위한 선택적 수사라는 것이다.
언뜻 그럴듯하다. 그런데 이 논리가 성립하려면 두 가지가 사실이어야 한다. 중수청이 해킹 수사를 실제로 회피했다는 것, 그리고 그 회피의 이유가 정치적 의도라는 것. 이 두 명제는 전혀 다른 성격의 주장인데 조선일보는 두 개를 하나처럼 이어붙인다.
실제로 확인되는 내용은 이렇다. 국정원 해킹 의혹과 관련한 수사는 경찰이 먼저 착수했고, 중수청은 중복 수사를 피해 경찰의 수사를 지켜보는 입장을 취했다.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기관이 인력과 디지털 포렌식 장비를 충분히 갖추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이 두 가지 사정이 겹쳐 중수청이 해당 사건을 선행 수사 기관인 경찰에 맡긴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것을 “수사 회피”라고 명명한다.
그런데 이 명명이 작동하려면 중수청이 해킹 수사를 맡는 것이 법적으로나 실무적으로 명백히 옳음에도 의도적으로 피한 사실이 있어야 한다. 경찰이 이미 수사 중인 사건에 별개 기관이 뛰어드는 것을 “회피”의 부재가 아니라 “중복”으로 보는 시각도 얼마든지 성립한다. 조선일보는 이 해석의 여지를 지운다.
더 흥미로운 지점은 따로 있다.
중수청 출범 자체에 조선일보는 줄곧 비판적이었다. 검찰 외 별도의 고위공직자 전문 수사 기구를 만드는 것이 수사권 분산을 명분으로 한 권력 장악이라는 논조를 견지해 왔다. 그런데 지금은 그 기관이 수사를 “덜” 한다고 비판한다. 출범 반대 → 출범 후 수사 확대 요구. 이 두 입장을 동시에 유지하는 것은 논리가 아니라 결론이 먼저 있다는 뜻이다. 중수청이 무엇을 하든 비판할 수 있도록 비판의 방향을 유연하게 바꾼다.
반론을 하나 끌어와 보자. “중수청이 한동훈 수사는 적극적으로 가져가면서 해킹 수사는 소극적인 것 자체가 선택성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이것이 조선일보 사설의 핵심 논거이고, 가장 설득력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두 사건에 대한 태도의 온도 차가 있다면 그것은 정당한 비판 지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비판이 유효하려면 두 사건이 중수청 수사 대상 요건과 우선순위 면에서 동등한 조건이어야 하고, 중수청의 한동훈 수사 착수가 법적 근거 없이 이루어진 것이어야 한다. 경찰이 한동훈 관련 사건을 불송치 결정한 뒤 중수청이 재검토에 들어간 것은 법령상 이의신청 및 재수사 요청 절차에 따른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 절차적 근거를 거론하지 않는다. “왜 문제인가”를 설명하는 대신, “정권 입맛”이라는 레이블을 붙이는 것으로 논증을 대체한다.
레이블은 논증이 아니다.
조선일보가 진짜로 해킹 피해자 보호에 관심이 있다면 사설의 두 축이 달라야 한다. 경찰 수사가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중수청의 개입 없이 충분한 수사가 이루어지고 있는지가 중심 질문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사설 어디에도 그 질문은 없다. 해킹 사건은 한동훈 수사를 공격하기 위한 대비 소재로 등장할 뿐이다.
이것이 이 사설의 구조적 문제다. 논거가 결론을 지지하기 위해 선택된 것이지, 논거가 결론을 이끌어낸 것이 아니다.
“정권 입맛 수사청”이라는 표현은 강렬하다. 그리고 그 강렬함이 독자로 하여금 논거를 검토하기 전에 결론에 동의하게 만든다. 프레이밍의 고전적 작동 방식이다. 이름을 먼저 붙이면 그 이름이 이후 모든 사실 해석의 필터가 된다. 중수청이 어떤 수사를 해도 “정권 입맛”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읽히기 시작한다.
조선일보가 중수청에 기대하는 것은 수사의 독립성이 아니다. 수사의 방향이 자신들이 원하는 쪽을 향할 때는 침묵하고, 불편한 방향을 향할 때 “정치화”라고 부를 준비가 된 언론이 있다. 그 언론이 사설로 수사 기관의 정당성을 심판하려 할 때, 독자가 먼저 물어야 할 것은 그 사설이 설정한 프레임의 좌표다.
중수청이 실제로 정치적 수사 기관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증거가 쌓인다면, 그때는 비판해야 한다. 기꺼이. 그러나 그 비판은 레이블이 아니라 절차와 법령과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지금 조선일보 사설이 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