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법 제86조는 법제사법위원회가 다른 상임위의 의결 사항에 대해 “자구 또는 체계”를 심사한다고 규정한다. 자구와 체계. 단어 선택이 맞는지, 조문 간 충돌은 없는지 들여다보는 역할이다. 그런데 이 조항이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는, 21대 국회 후반기 법사위원장을 지낸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 재임 기간에 법사위 전체회의가 단 두 차례 열렸다는 사실 하나로 충분히 설명된다.
두 번. 다른 상임위가 의결한 법안들이 법사위 문턱에서 쌓여 있는 동안, 전체회의는 두 번이었다.
법사위가 어떻게 이 자리까지 왔는지를 이해하려면, “체계·자구 심사”라는 명목이 실제로 어디까지 확장되어 왔는지를 봐야 한다. 법사위는 법안의 내용이 정책적으로 옳은가 그른가를 판단하는 곳이 아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법사위원장이 회의 개최 자체를 거부하거나, 소위원회 회부 후 일정을 잡지 않는 방식으로 법안을 사실상 봉인할 수 있다. 다수결로 통과된 법안이, 법사위원장 한 명의 의지에 의해 본회의로 가지 못하는 구조다. 이것은 체계 심사가 아니다. 입법 거부에 가깝다.
이 구조의 문제는 한쪽이 악용한다는 데 있지 않다. 어느 쪽이 잡든 악용된다는 데 있다.
21대 전반기,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포함해 상임위를 독식했을 때 비판이 쏟아진 것은 사실이다. 당시 국민의힘이 등원 자체를 거부하며 항의했고, 일부 진보 논자들조차 “이건 좀 과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21대 후반기가 되자, 법사위원장을 가져간 국민의힘은 정확히 그 구조를 반대 방향으로 활용했다. 전반기에 민주당이 처리한 법안들의 후속 입법이, 후반기 법사위 문턱에서 멈췄다.
같은 구조, 같은 방식, 다른 당. 거울처럼 반복됐다.
여기서 “그러니 양쪽 다 문제”라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양비론은 이 상황에서 오히려 책임을 희석시킨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다른 지점이다. 두 당이 21대 국회에서 각각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을 제한하거나, 법사위원장의 회의 개최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그 문제를 만든 당사자들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알면서 고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다. 지금 당장 자기 당에 유리한 구조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2대에서 이 논의가 다시 불거지고 있는 지금, 무엇을 봐야 하는가.
법사위원장을 누가 갖느냐를 둘러싼 여야 공방은 표면적으로는 원 구성 협상이다. 그런데 그 아래를 보면, 사실 이건 법사위라는 구조 자체가 만들어놓은 유인이다. 법사위원장 자리가 사실상 거부권을 품고 있기 때문에, 의석이 적은 쪽은 그것을 반드시 가져가야 할 보험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의석이 많은 쪽은 내줄 이유를 찾지 못한다. 협상이 길어지는 것은 협상 당사자의 무능이 아니라, 구조가 만들어놓은 필연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종종 제기되는 반론이 있다. “법사위 권한을 줄이면 졸속 입법이 늘어난다. 체계 심사는 필요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체계·자구 심사 자체가 불필요한 것은 아니고, 실제로 조문 간 충돌을 잡아낸 사례도 있다. 그러나 이 반론은 현행 구조를 정당화하지 못한다. 체계 심사가 필요하다는 것과, 위원장 한 명이 회의 개최를 거부해 법안 전체를 막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주장이다. 심사 기능을 살리면서 봉쇄 기능을 제거하는 것은 충분히 설계 가능하다. 예를 들어, 법사위가 일정 기간 내에 심사를 완료하지 않으면 본회의에 자동 부의되도록 하는 방식은 이미 여러 차례 논의된 대안이다.
안 되는 게 아니라, 하지 않는 것이다.
22대 국회 원 구성을 둘러싼 지금의 공방이 결국 또 합의로 끝날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법사위원장 자리를 어느 당이 가져가든, 혹은 어떤 방식으로 나누든, 그 협상의 결과가 구조 개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이 장면은 22대 후반기 혹은 23대에 그대로 재생될 것이다. 여야가 번갈아 앉는 의자 하나를 놓고, 번갈아 같은 욕을 먹으면서.
법사위 개혁이 지지부진한 진짜 이유는 두 당이 모두 언젠가는 그 의자에 앉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 없애면 나중에 내가 못 쓴다. 이 계산이 구조 개혁을 막고 있다. 그리고 그 계산이 작동하는 한, 법사위는 계속 뇌관으로 남는다. 터질 때를 기다리는 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