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ABC 이론, 결국 친문이 B세력 증명했다.

ABC 이론, 결국 친문이 B세력

“이념 정치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이익이 사라지는 순간 제일 먼저 움직인다.”

유시민이 민주당 내부 권력 지형을 설명하며 ABC 이론을 꺼냈을 때, 꽤 그럴듯하게 들렸습니다. 정치 세력을 이념형(A), 이익형(B), 혼합형(C)으로 나누고, 권력이 사라지면 B세력이 가장 먼저 이탈한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친문을 A, 친명을 B로 분류했습니다.

지금 현실을 보면 어떻습니까.

지방선거 이후 이재명 대통령 체제에 가장 공격적으로 맞서고 있는 건 친명이 아니라 친문입니다. 이론의 결론과 현실의 움직임이 정반대입니다. 예언이 빗나간 게 아닙니다. 예언 속에 숨어 있던 전제가 처음부터 잘못됐던 겁니다.

예측의 절반은 맞았다

친명계는 지금 조용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권력을 쥔 상황에서 집권 세력의 핵심부에 들어갔으니 움직임이 잠잠한 건 자연스럽습니다. 유시민의 이론대로라면 이익을 챙긴 B세력이 조용히 있어야 맞고, 그 예측은 맞아들어갔습니다.

문제는 나머지 절반입니다.

이념이 있는 A세력, 즉 친문은 이익과 관계없이 흔들리지 않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일 시끄럽습니다. 당내에서 “이재명 노선이 노무현 정신과 다르다”는 프레이밍이 등장하고 있고, 그 발신지가 이념적 순수성을 자처해온 친문 그룹입니다. 이재명 정부의 인사 배치, 당 운영 방식, 정책 기조에 대한 공개 비판이 나오는데, 그 인사들의 계보는 대부분 노무현·문재인 정부 시절 핵심 라인과 닿아 있습니다.

계파 갈등이 아닙니다. 권력 교체 이후 소외된 세력의 복귀 시도입니다.

이론의 균열

ABC 이론에는 처음부터 치명적인 전제 오류가 있었습니다. 이념과 이익이 서로 배타적이라는 가정입니다. 실제로는 이념이 종종 이익을 합리화하는 언어로 기능합니다. 이념이라는 포장지가 있으면 자신의 이익 추구를 훨씬 그럴듯하게 포장할 수 있습니다.

친문이 “노무현 정신”을 앞세워 이재명 정부를 비판할 때, 그 언어의 형식은 이념적입니다. 그런데 타이밍을 보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이재명이 약할 때, 지방선거 후 당내 구도가 재편될 시점에, 자신들이 밀려난 바로 그 순간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게 순수한 이념적 문제 제기인지, 당내 주도권 회복을 위한 이념 활용인지는 독자가 판단하면 됩니다.

이념과 이익의 구분 자체가, 이미 이익적으로 설계된 이분법이었을 수 있습니다.

자기합리화의 이론화

더 역설적인 게 있습니다. 유시민의 ABC 이론은 처음부터 중립적인 정치 분석이 아니었습니다. 친명을 B세력으로 규정함으로써 친문의 이재명 비판을 이념적으로 정당화하는 구도를 만들려는 시도였습니다. ABC 이론 자체가 이미 이익 추구의 산물이었다는 겁니다.

이익 추구를 비판하는 이론을, 이익 추구를 위해 만들었습니다.

이 구도는 한국 진보 정치의 오래된 패턴과 연결됩니다. 이념을 언어로 가진 세력이 그 언어를 무기 삼아 당내 헤게모니 싸움을 하는 방식입니다. 노무현 정신, 민주주의의 가치, 진보의 순수성 — 이런 언어들이 당내 비주류가 주류를 공격하는 도구로 활용될 때가 있습니다.

그 둘을 구분하는 기준은 타이밍입니다. 권력을 쥐었을 때는 그 이념을 말하지 않다가, 권력을 잃었을 때 말하기 시작한다면 — 그건 이념의 언어가 아니라 이익의 언어입니다.

친문은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지금과 같은 강도로 이재명을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그때와 지금 사이에 바뀐 건 이념이 아니라 권력의 위치입니다. 유시민의 이론이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세력은, 결국 그 이론을 만든 진영 자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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