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사설 분석] 정치 주도 ‘1450조 프로젝트’, 물·전력·인재 여전히 불투명

이재명 정부가 2025년 6월, 전국 세 권역에 걸친 반도체·AI 메가 클러스터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호남에 800조 원 규모의 반도체 팹, 충청에 81조 원 패키징 단지, 영남에 550조 원 AI 데이터센터. 합산하면 1450조 원이다.

숫자가 크면 언론은 반사적으로 회의론을 꺼낸다. 그건 당연한 저널리즘 반응이다. 조선일보도 사설에서 물 부족, 전력 공급, 인재 확보 문제를 차례로 짚었다. 지적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반도체 팹은 물을 엄청나게 소비하고, 데이터센터는 전력을 먹는 블랙홀이며, 한국의 반도체 인력 수급은 실제로 빠듯하다.

그런데 조선일보 사설이 이 세 가지 문제를 나열한 방식에는 구조적 의도가 숨어 있다.

문제 제기가 아니라 결론의 포장지

사설은 인프라 우려를 제기하면서 동시에 이 계획 전체를 “정치 반도체”로 규정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전국 권역을 나눠 선물을 돌린 정치 이벤트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 — 인프라 우려와 정치적 동기론 — 는 논리적으로 별개의 주장인데, 사설 안에서는 마치 하나처럼 엮인다. 인프라가 불투명하다, 고로 이건 정치 쇼다. 이 비약이 사설의 핵심 작동 방식이다.

가장 선명한 사례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다. 조선일보는 용인 클러스터가 첫 삽을 뜨기까지 6년이 걸렸다는 점을 언급하며 대형 반도체 프로젝트의 실행 가능성에 의문을 던졌다. 그런데 왜 6년이 걸렸는지는 쓰지 않았다. 송전선로 건설을 둘러싼 지역 주민 반대, 지자체 간 이해충돌, 토지 보상 협의 지연이 그 이유다. 이 문제들은 민간 기업이 단독으로 풀 수 없는 구조적 갈등이었다. 정부가 조율에 직접 나서야 했던 이유가 바로 거기 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그 개입 시도를 “정치 주도”라고 불렀다. 문제의 원인은 지우고, 해결 시도만 남겨 비판한 것이다.

국가 개입을 “정치 쇼”로 부르는 건 누가 봐도 어색하다

2022년 미국 반도체지원법(CHIPS Act)은 527억 달러의 공적 자금을 투입해 인텔, TSMC, 삼성의 미국 내 팹 건설을 직접 지원했다. 일본은 구마모토에 TSMC 팹을 유치하기 위해 보조금 1조 2000억 엔을 쐈다. 독일은 마그데부르크 인텔 팹에 100억 유로를 지원하기로 했다가 인텔의 재정 위기로 협상이 꼬이기도 했지만, 국가가 반도체 인프라 유치에 직접 개입한다는 원칙 자체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 나라들 중에서 조선일보가 “정치 반도체”라는 표현을 쓴 나라는 없다. 같은 논리라면 바이든의 CHIPS Act도 중간선거를 앞둔 정치 이벤트였고, 기시다의 반도체 정책도 자민당 지지율 관리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그 정책들을 ‘산업 전략’이라고 불렀다. 이재명 정부에게만 다른 단어를 쓰는 것이다.

물론 반론도 있다. 1450조라는 숫자가 실제 투자 확정액이 아닌 목표치에 가깝고, 권역별 배분이 지역 균형 논리를 담고 있는 건 사실이다. 효율적 클러스터링보다 정치적 형평성이 앞섰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집행 계획의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 비판은 “이 계획을 어떻게 더 잘 실행할 것인가”를 묻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이 선택한 방향은 달랐다. 사설은 계획의 결함을 분석하는 대신, 계획의 존재 자체를 정치적 의심의 대상으로 만드는 데 지면을 썼다. 인프라 우려가 결론이 아니라 도구였다는 뜻이다.

이 프레임이 반복될수록 손해 보는 건 따로 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직면한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TSMC는 미국, 일본, 독일, 아랍에미리트에 동시에 팹을 짓는 전략적 분산을 가속하고 있고, 삼성과 SK하이닉스는 HBM 경쟁에서 엔비디아·마이크로소프트를 고객으로 붙잡기 위해 전방위 투자를 집행 중이다. 이 국면에서 국가가 인프라 병목을 걷어내지 않으면, 민간 투자는 속도를 낼 수 없다.

이 시점에 한국의 유력 신문이 정부의 인프라 개입 자체를 정치화 프레임으로 소비하는 건, 반도체 산업 논의의 수준을 낮추는 일이다. 물 공급 계획이 부족하면 물 공급 계획을 추궁하면 된다. 전력 로드맵이 불투명하면 전력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요구하면 된다. 그게 산업 정책 저널리즘이다.

“정치 반도체”라는 라벨을 붙이는 순간, 그 이후의 모든 논의는 산업이 아닌 정치의 언어로 소비된다. 조선일보가 선택한 건 전자가 아니라 후자였다. 그리고 그 선택이 의도적이었다면, 사설이 진짜로 걱정한 건 인프라가 아니라는 결론 외에 달리 내릴 수 있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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