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봄, 정청래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의 미국 비자가 보류됐다. 국정원 요원들에 대한 비자 거부 사례도 뒤따랐고, 주한 미국 대사 스틸은 통일부 장관과의 면담 일정을 잡지 않았다. 이 세 개의 사건은 각각의 맥락과 경위를 가진 개별 사안이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이것들을 하나의 선으로 꿰어 이런 사설을 냈다. “친북·친중 의심이 본질 아닌가.”
세 건의 외교적 마찰을 하나의 이념 기호로 압축하는 솜씨는, 솔직히 말하면 능숙하다. 독자 입장에서는 저절로 “그래서 이재명 정부가 문제구나”로 읽힌다. 그게 이 사설이 의도한 경로다.
프레임을 설계한 방식
이 사설의 논리 구조는 단순하다. 미국이 한국에 불쾌감을 표시하는 행위들이 있다 → 그 이유는 현 정부의 대북·대중 노선에 대한 불신이다 → 따라서 이재명 정부가 안보 신뢰를 훼손하고 있다. 세 단계로 구성된 이 논리는 두 번째 단계, 즉 인과관계 부분에서 결정적으로 약하다.
비자 보류와 면담 기피가 ‘친북·친중 의심’ 때문이라는 근거가 사설 어디에도 없다. 미 국무부가 그렇게 밝혔는가? 아니다. 백악관이 공식 입장을 냈는가? 아니다. 조선일보가 제시한 것은 추정이다. 더 정확히는, 추정을 결론처럼 포장한 것이다.
외교적 긴장을 이념 문제로 환원하는 이 수법은 새로운 게 아니다. 노무현 정부 때도, 문재인 정부 때도 미국과의 갈등이 생기면 보수 언론은 늘 “친북 코드” 탓으로 돌렸다. 그 공식이 너무 오래됐기 때문에, 오히려 이번엔 뭔가 놓치고 있는 게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 한 번만 생각해보자
2025년의 미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다. 이 행정부는 동맹을 협력 대상이 아니라 협상 상대로 본다는 걸 출범 첫날부터 분명히 했다. NATO 분담금 압박, 일본과의 관세 협상, 한국에 대한 방위비 재협상 요구, 반도체 공급망 재편 압력.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과 이념이 비슷한 나라들에도 똑같이 압박 카드를 꺼내 들고 있다.
여기서 물어봐야 한다. 비자 거부와 정보 공유 제한이 외교적 레버리지, 즉 협상 카드로 쓰이고 있다는 가능성을 조선일보는 왜 한 번도 다루지 않는가?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국에 압박을 가할 때 가장 눈에 띄는 수단부터 꺼낸다. 고위 인사 비자 보류, 정보 공유 제한, 대사급 면담 기피. 이것들은 협상 테이블에서 상대방을 긴장시키는 고전적인 외교 압박 도구다. 이념 문제가 아니라 거래 문제일 때도 이 도구들은 똑같이 쓰인다.
일본을 보면 더 분명해진다. 이시바 정권은 누구도 친북·친중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런데 트럼프는 일본에도 25% 상호관세를 때렸고, 방위비 압박을 이어갔다. 미국의 동맹 압박이 상대의 이념 때문이 아니라는 증거가 이미 태평양 건너편에 있다.
반론을 피하지 않겠다
물론 반론이 있다. 정청래 의원은 과거 대북 발언에서 논란이 됐던 인물이고, 이재명 정부가 대북 유연성을 강조해온 것도 사실이다. 미국 쪽에서 이 정부의 대북 노선을 불편하게 여길 소지가 아예 없지 않다.
이걸 부정하면 나도 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다만 이렇게 물어야 한다. “소지가 있다”와 “그게 원인이다”는 전혀 다른 진술이다. 조선일보는 그 간극을 주장으로 메웠다. 근거로 메운 게 아니라 서사로 메웠다. 그 서사가 특정 정치적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것은 논평이 아니라 의제 설정이다.
한미 관계의 이념적 균열 가능성을 짚는 것 자체가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미국 측 공식 입장이나 구체적 전달 채널을 제시해야 한다. 없으면 추정이고, 추정을 사실처럼 제목에 박으면 그건 다른 문제다.
이 프레임이 왜 위험한가
진단이 틀리면 처방도 틀린다. 만약 현재 한미 간 마찰의 원인이 이재명 정부의 이념 성향이라면, 해법은 대북 강경 노선으로의 전환이다. 조선일보 사설이 결국 도달하고 싶은 곳이 그쪽이다.
그러나 원인이 트럼프 행정부의 거래적 외교 압박이라면, 해법은 전혀 다르다. 방위비 협상 전략을 강화하고, 반도체·배터리 공급망 협력에서 한국의 카드를 극대화하며, 다층적 채널로 미국 내 한국의 존재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념을 바꿔봤자 협상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한미 관계를 이념의 문제로 보는 시각은, 외교를 구조가 아니라 감정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동맹국의 이념을 보고 대우를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가 보는 건 그 나라가 미국에 얼마나 가치 있는 협상 파트너인가이다. 조선일보가 “친북 의심”을 해법으로 제시하는 동안, 실제 협상력의 문제는 논의 밖으로 밀려난다.
그게 이 사설이 끼치는 진짜 해악이다. 틀린 진단을 퍼뜨리는 것보다, 올바른 진단의 자리를 차지해버리는 것이 더 나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