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가 2025년 7월 초 이 기사를 올린 타이밍은 우연이 아니다. 검찰개혁 관련 입법 논의가 국회에서 다시 불붙으려는 시점, 민주당 강경파 의원 김용민이 “자리를 탐하지 않는다, 사법개혁을 위해 계속 진군하겠다”고 선언했고, 이재명 대통령은 한 내부 회의에서 “능력도 안 되면서 큰 자리를 요구하는 사람이 있다”고 받아쳤다. 중앙일보는 이 두 발언을 나란히 놓았다.
그 편집 판단 자체가 이 칼럼의 출발점이다.
보수 언론이 여권 내부의 이견을 보도할 때는 항상 특정한 목적이 있다. ‘분열’이라는 단어를 제목 언저리에 심어두거나, 두 발언을 교차 편집해 충돌처럼 보이게 만든다. 독자가 기사를 다 읽고 나면 개혁 세력이 서로 싸우는 이미지만 남는다. 정책의 내용은 사라지고, 인물 간의 갈등만 전면에 부각된다. 이것이 중앙일보가 이번에 설정한 프레임이다.
중앙일보는 검찰개혁 자체에 일관되게 반대해온 언론사다. 고검장·검찰총장 출신 인사들을 지면에 자주 불러 “개혁이 아니라 장악”이라는 논리를 반복해왔다. 그 언론이 지금 여권 강경파의 발언을 특별히 친절하게 받아쓰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개혁 진영 내부의 긴장을 ‘내홍’으로 규정하면, 개혁의 정당성을 둘러싼 본론 논쟁을 비켜갈 수 있다. 검찰개혁이 왜 필요한지, 현재 논의 중인 법안이 어떤 내용인지는 다루지 않아도 된다. 그냥 “저들끼리도 싸운다”는 인상만 남기면 충분하다.
이 수법은 새롭지 않다. 노무현 정부 때도, 문재인 정부 때도 보수 언론은 여권 내 이견이 조금이라도 표면에 드러나면 그것을 곧장 ‘균열’로 포장했다. 그 균열 담론이 축적되면 지지층의 피로감을 높이고, 개혁 의제를 희석시키는 효과가 생긴다.
그렇다면 이 프레임을 해체하면 무엇이 남는가.
집권 세력 안에서 속도와 방법론을 두고 이견이 생기는 것은 비정상이 아니다. 오히려 그게 정상적인 민주적 정치 과정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강경파의 자리 요구를 공개적으로 견제한 것, 김용민 의원이 그에 맞서 원칙론을 천명한 것—이 두 가지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곧 민주당이 단일한 위계 조직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반론은 있다. 여권 내 긴장을 ‘건강한 토론’으로만 보는 것도 지나치게 관대한 독해 아닌가. 실제로 개혁의 방향이 아니라 인사 배분을 둘러싼 세력 다툼이 개혁 언어를 빌리고 있는 거라면, 그건 외부의 프레임 공격보다 더 심각한 문제다.
이 반론은 일리가 있다. 특히 김용민 의원이 특정 정치인—당내 차기 주자로 거론되는—을 지지하는 선명성 경쟁의 일환으로 이번 발언을 했다면, 그것은 개혁의 동력이 아니라 개혁의 외피를 두른 포지셔닝 정치일 수 있다. 그 가능성을 닫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 비판이 타당하다 해도, 중앙일보의 프레임은 별개로 해체되어야 한다. 어떤 행위자의 동기가 순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과, 그 행위자가 말하는 개혁 과제 자체가 필요하다는 것은 서로 다른 명제다. 중앙일보는 두 명제를 뒤섞어, 행위자의 의심스러운 동기로 개혁 과제 전체에 물음표를 붙이는 방식을 쓴다. 이것이 그 언론사의 오래된 논리적 전략이다.
지금 검찰개혁 논의의 본질은 이렇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실질적 독립성 확보, 검사 기소독점 완화, 수사-기소 분리 원칙의 법제화—이 세 축을 둘러싸고 여당 내부에서도 어느 수위까지 이번 국회 회기 안에 밀어붙일 것인지 조율이 진행 중이다. 이 내용이 보도의 중심이어야 한다. 누가 어떤 발언으로 누구를 견제했는지가 아니라.
중앙일보 사설은 그 조율 과정을 ‘갈등’이라는 액자에 넣어 전시한다. 그 액자를 걷어내면, 집권 여당이 중요한 입법 과제 앞에서 내부 합의를 형성해가는 과정이 보인다. 그것이 더 정확한 독해다.
보수 언론이 여권 내 이견을 키워 보도하는 날, 우리가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저들이 왜 싸우나”가 아니다. “저 언론사는 왜 지금 이 장면을 키웠나”다. 그 질문을 먼저 하는 독자만이 프레임 밖에서 정치를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