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미 관계, 어디가 어느 정도 나쁜지조차 모를 정도다

지난 5월, 국정원장의 방미가 사실상 거부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공식 부인이 있었지만, 그것이 부인이었는지 사실 확인이었는지조차 불분명했다. 한미 정보 당국 사이에 무언가 어긋나 있다는 신호는 그 이후에도 이어졌다. 국정원 직원 비자 발급이 막혔고, 대북 정보 공유가 실질적으로 끊겼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전작권 전환 협의에서 이견이 불거졌고, 광주 군공항 이전 문제를 두고도 미국과 온도차가 드러났다. 거기에 쿠팡 사태를 계기로 미 의회 일각에서 한국의 플랫폼 규제를 문제 삼는 목소리가 나왔고, 정보통신망법을 둘러싼 갈등까지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항목만 세면 일곱 개다. 그런데 정부도, 언론도, 야당도 이 일곱 개를 하나의 그림으로 펼쳐놓고 읽어낸 적이 없다.


이 상황을 둘러싼 가장 흔한 설명은 두 갈래다. 하나는 보수 진영의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반미 성향이 동맹에 균열을 냈다.” 다른 하나는 정부 지지층 쪽에서 나오는 것이다. “트럼프가 원래 이렇다. 일본도, 유럽도 다 당하고 있다.”

두 설명 모두 편하다. 그리고 두 설명 모두 현실을 설명하는 데 실패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국을 압박하는 방식은 거래적이고 거칠다. 이건 사실이다. 그런데 일본은 지금 반도체, 방위, 경제 전반에서 미국과 협의 채널을 적극적으로 가동하고 있다. 인도는 트럼프 진영의 언어를 영리하게 흡수하면서 자국 이익을 챙기는 중이다. 그에 비해 한국은 여러 분야에서 동시에 마찰을 빚고 있다. “트럼프가 원래 이렇다”는 설명은, 왜 하필 한국에서만 이렇게 여러 갈래로 삐걱거리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반대편 설명, 즉 “이재명 정부의 반미 성향” 탓이라는 주장은 더 단순하다. 이 프레임은 구조를 인물로 치환하는 고전적인 수법이다. 실제 갈등 지점을 들여다보면, 전작권 전환 속도는 이전 정부 때부터 이어진 협의 사안이고, 정보통신망법 갈등은 글로벌 빅테크와 각국 규제 당국 사이에서 반복되는 마찰 구조다. 쿠팡 문제는 미 의회 일각의 로비 반응에 가깝고, 국정원 채널 단절은 대북 정책 방향의 이견과 연결되어 있다. 성향의 문제라기보다는 이해관계의 충돌이다.

진단이 틀리면, 처방이 제대로 될 수 없다.


어디서 어긋났는가

한미 마찰의 항목들을 가로로 펼쳐놓고 보면, 성격이 서로 다른 층위들이 섞여 있다는 게 보인다.

정보·안보 라인의 냉각은 가장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문제다. 국정원장 방미 의혹, 직원 비자 발급 거부, 대북 정보 공유 단절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채널들이 막혔다면, 그건 외교적 수사나 성명으로 복구되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다. 정보 채널은 신뢰가 전제될 때만 작동한다. 지금 신뢰에 어떤 균열이 생겼는지, 어떤 계기로 생겼는지를 파악하지 않으면, 복구 경로를 설계할 수 없다.

전작권 전환과 방위비 분담은 중장기 구조 문제다. 트럼프 행정부는 방위비를 협상 레버리지로 쓰는 데 익숙하다. 전작권 전환 속도 조절은 미국 입장에서 한국의 자율성 확대에 대한 견제로 작동할 수 있고, 한국 입장에서는 국방 주권의 문제다. 이 사안은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불편할 수밖에 없는 지형 위에 있다. 다만 그 불편함을 어떻게 협상 공간으로 바꾸느냐는 전략의 문제다.

통상·플랫폼 갈등은 성격이 또 다르다. 정보통신망법이나 플랫폼 규제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EU, 영국, 호주 등에서도 동시에 진행 중인 규제 흐름의 일부다. 미국 빅테크와 각국 규제 당국의 마찰은 구조적이고,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 플랫폼 기업 편에 서는 건 이미 예고된 수순이다. 이 부분에서 갈등이 발생한 건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 있었다.

세 갈래의 문제가 동시에 터지고 있는데, 정부의 대응이 하나의 그림으로 묶여 있는지 의문이다.


이 시점에서 정부를 옹호하는 측은 이렇게 반박할 수 있다. “다 파악하고 있지만, 외교 사안이라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맞는 말이다. 외교 협상의 상당 부분은 공개될 수 없다. 그리고 정부가 채널별로 어느 정도 대응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 문제는 그 대응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만이 아니다. 어디가 어느 정도로 나쁜지에 대한 정부 자신의 공식적인 인식이 보이지 않는다. 총량 관리가 되고 있는지가 불분명하다. 일곱 개의 마찰이 각각 다른 부처, 다른 채널에서 개별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면, 어느 시점에서 이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한 번에 문제가 될 수 있다.

조용히 처리하는 것과, 얼마나 나쁜지 파악조차 못 하고 있는 것은 다르다. 그리고 지금 외부에서 관찰할 수 있는 신호들은 후자에 가깝다.


“관계가 나쁘다”는 진단은 이미 공유되어 있다. 보수 언론이 공격에 쓰고, 진보 진영이 방어하면서, 정작 어디가 어떻게 나쁜지는 계속 뭉개진 채 소비되고 있다. 그 안에서 실제 처방은 나오지 않는다.

문제를 성향의 언어로 읽으면 처방은 “태도를 바꿔라”가 된다. 구조의 언어로 읽으면, 어느 채널을 먼저 복구하고, 어느 사안은 장기 협상 테이블로 넘기고, 어느 영역에서 한국의 입장을 버티느냐는 질문이 나온다.

후자의 질문이 훨씬 어렵다. 그래서 아무도 거기까지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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