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정봉주 대통령 특별보좌관이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관련 의혹을 체계적으로 추적하기 위한 전담팀 구성을 언급했다. 중앙일보는 이 발언을 사설로 받아쳤다. 제목부터 ‘MB 저격수’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정봉주의 과거 — 이명박 BBK 의혹 제기 과정에서 받은 허위사실 유포 유죄 판결 — 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 구성 자체가 하나의 전략이다.
중앙일보 사설이 묻는 질문은 이렇다. “전과자가 의혹을 제기해도 되는가?” 언뜻 합당한 질문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질문이 작동하는 방식을 보면 다르다. 정봉주의 과거를 앞에 깔아두면, 그 뒤에 나올 모든 사실 제기는 자동으로 ‘또 저러네’의 맥락에 놓인다. 의혹의 내용이 아니라 제기자의 신뢰도를 먼저 격파하는 것 — 이것은 논증이 아니라 면역이다. 독자가 내용을 읽기도 전에 ‘저 사람 말은 걸러야 해’라는 필터를 심어두는 것이다.
그 필터 뒤에 무엇이 있는지가 정작 중요하다.
한동훈 전 대표는 2022년 법무부 장관 재직 중, 당시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기소 계획서를 외부에 공개한 혐의로 공무상 비밀 누설로 고발된 상태다. 이 사안은 정봉주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고발장이 접수됐고, 수사 여부를 둘러싼 공방이 실제로 진행 중이다. 전담팀 구성 언급은 이 맥락에서 나왔다. 그런데 중앙일보 사설은 이 혐의의 실체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는다. 대신 정봉주가 과거에 법원에서 유죄를 받았다는 사실을 반복한다.
이쯤에서 반론을 정면으로 다뤄야 한다. “정봉주는 실제로 허위사실로 유죄를 받은 사람 아닌가. 그 이력은 신뢰도 평가에서 유효하지 않은가?”
유효하다. 과거 판결은 사실이고, 정봉주의 이력을 독자에게 알리는 것 자체는 언론의 역할에 속한다. 문제는 그게 사설 논리의 전부일 때다. 제기자의 과거가 의혹 자체를 소멸시킬 수는 없다. 만약 그 논리가 작동한다면, 전과 기록이 있는 내부고발자의 폭로는 전부 무효가 된다. 현실에서 권력형 비리를 가장 먼저 알아채는 사람들이 종종 ‘결격 이력’을 가진 이들이라는 점은, 저널리즘이 오래전부터 씨름해온 문제다. 중앙일보 사설은 그 씨름을 포기하고 손쉬운 경로를 택했다.
사설이 묻지 않은 것
‘저격수가 통할까’라는 제목은 정치 게임의 언어다. 저격수는 적을 향해 쏜다. 이 프레임에서 한동훈은 표적이고, 정봉주는 과거에 실패한 저격수다. 따라서 결론은 이미 제목에 있다. ‘이번에도 안 통할 것이다.’
그런데 저널리즘의 질문은 ‘이 공격이 통하는가’가 아니다. ‘이 의혹이 사실인가’다. 중앙일보 사설은 전자를 물었다. 후자는 묻지 않았다. 의혹의 근거가 되는 문건의 존재, 공무상 비밀의 법적 요건, 장관 재임 중 외부 유출의 정황 — 이것들은 사설 어디에도 없다.
이것이 의도인지 실수인지를 나는 모른다. 하지만 결과는 분명하다. 독자는 ‘정봉주가 또 나섰구나’라는 인상을 얻고, 한동훈 관련 의혹이 검증받을 공간은 줄어든다. 보수 야당의 유력 정치인을 둘러싼 법적 쟁점이 ‘정치 공세’의 카테고리로 이동하는 것이다.
보수 언론이 야당 인사를 감싸는 방식은 전통적으로 두 가지다. 의혹 자체가 거짓임을 직접 논증하거나, 의혹 제기자를 공격해 논점을 흐리거나. 첫 번째 방식은 힘들다. 반박 논리를 구성해야 하고, 팩트로 싸워야 한다. 두 번째 방식은 쉽다. 과거 기록을 꺼내고, ‘저 사람 믿을 수 있냐’를 반복하면 된다.
중앙일보는 두 번째를 택했다.
한 가지를 더 짚고 싶다. 중앙일보의 이 사설은 단순히 정봉주를 비판하는 글이 아니다. 사설의 공식적 역할은 언론사의 공론 참여다. 특정 의혹에 대해 ‘제기자가 문제적이니 이 의혹을 진지하게 취급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사설로 발행하는 것은, 의제 설정의 권한을 가진 언론이 그 권한을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다.
정봉주가 이전에 틀린 적 있다는 사실은, 이번에도 틀렸다는 증거가 되지 않는다. 반대로 정봉주가 옳다는 보증도 물론 아니다. 그게 바로 취재가 필요한 이유다. 사설이 해야 할 일은 ‘이 의혹, 취재해서 진위를 따져야 한다’는 압력이었다. 중앙일보는 그 반대 방향으로 사설을 썼다.
저격수가 통할지 안 통할지를 예측하는 건 칼럼니스트가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예측이 의혹 검증을 대체해서는 안 된다. 중앙일보 사설이 놓친 것은 바로 그 경계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