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사설 분석] 한·미 정보 협력 복원이야말로 국익이자 실용

2025년 5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구성 우라늄 시설 관련 발언을 한 직후, 미국 측이 한미 정보 공유를 부분 중단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중앙일보는 이 사태를 다룬 사설에서 “한·미 정보 협력 복원이야말로 국익이자 실용”이라고 주장했다. 제목만 보면 지극히 당연한 말처럼 들린다. 동맹국과의 정보 협력이 국익에 부합한다는 데 누가 반론을 달겠는가.

그런데 사설을 읽고 나면 뭔가 이상하다. 결론은 ‘복원’인데, 그 출발점에 있는 질문들이 통째로 빠져 있다.


정동영 장관 발언의 정확한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미국이 왜 그 발언에 민감하게 반응했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정보 공유가 중단됐는지, 중앙일보 사설은 이 중 어느 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원인 분석 없이 결론으로 직행한다. “이 대통령의 태도가 문제”라는 진단이 사설 전체를 관통하고,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한 “굴종적 사대 지양”이라는 표현을 끄집어내 이것이 “미국 불신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비판한다.

이 구조를 있는 그대로 보면, 사설이 설정한 프레임은 단순하다. 미국이 불쾌해했으니 한국이 자세를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국익’과 ‘실용’이라는 포장지를 씌웠지만, 내용물은 다르지 않다.

프레임의 핵심을 짚자

“굴종적 사대 지양”이라는 표현이 왜 문제인가. 주권국가 대통령이 자국 외교의 기본 원칙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동맹 관계에서도 일방적 복종이 아닌 상호 존중을 추구하겠다는 선언이다. 이것이 미국에 대한 불신의 표현으로 읽혀야 하는가, 아니면 독립적 외교 주체로서의 당연한 발언으로 읽혀야 하는가.

중앙일보는 전자를 택했다. 그리고 이 선택 자체가 이 사설의 진짜 논리 구조를 드러낸다. 동맹국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외교 원칙보다 우선한다는 것, 대통령의 외교 발언조차 워싱턴의 감정 상태를 기준으로 자기 검열해야 한다는 것. 이것을 ‘실용’이라고 부른다면, 그 실용은 누구를 위한 실용인가.

반론을 먼저 세워두자. 정보 협력 중단이 실제 안보에 영향을 준다면, 그리고 그 발단이 된 발언이 외교적으로 부적절했다면, 정부가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맞다. 동맹 신뢰는 추상적 가치가 아니라 실질적 안보 자산이고, 미국과의 정보 공유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핵심 인프라다. 이 점을 무시하고 “굴종” 프레임만 고집하는 것도 공정하지 않다.

그러나 이 반론은 중앙일보 사설을 구하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려면, 먼저 신뢰가 왜 손상됐는지를 정확히 따져야 한다. 정동영 장관 발언이 구체적으로 어떤 정보 보안 원칙을 위반했는가. 미국이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정보 보안상의 실제 우려 때문인가, 아니면 한국 정부의 대북·대미 정책 방향에 대한 정치적 불만 때문인가.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른 문제고, 처방도 달라져야 한다.

사설은 이 구분을 하지 않는다. 원인을 흐리고 결론만 선명하게 남긴다. 그 결론이 “이 대통령이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니, 사실상 분석이 아니라 정치적 요구다.

한미 동맹과 자율성의 긴장

한미 동맹은 비대칭 동맹이다. 군사력, 정보력, 경제력 어느 면에서도 한국이 미국과 대등하지 않다. 이 비대칭성을 인정하는 것과, 그 비대칭성을 영구적인 종속 관계로 내면화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실용외교의 핵심은 이 둘을 구분하는 데 있다.

박정희 시대 이후 한국 외교의 고질적 패턴은 안보 이슈를 빌미로 한미 관계의 자율성 논의 자체를 봉쇄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안보가 위급하니 동맹에 균열을 낼 수 없다”는 논리가 반복되면서, 정작 ‘어떤 동맹을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계속 유예됐다. 중앙일보 사설이 이 패턴에서 얼마나 멀리 있는지 솔직히 의심스럽다.

“굴종적 사대 지양”은 미국에 대한 적대 선언이 아니다. 동맹 관계 안에서도 주권적 판단을 유지하겠다는 원칙의 표명이다. 이것이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하는 말이라면, 그 ‘불필요함’의 기준은 어디서 오는가. 미국이 불편해하면 불필요한 것인가.

중앙일보가 말하는 ‘국익’의 기준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의 이익이 아니라, 한미 관계의 표면적 안정이 국익의 척도다. 그리고 그 안정을 해치는 주체는 외교적 압박을 가하는 미국이 아니라, 당연한 원칙 발언을 한 한국 대통령이 된다.

이것이 이 사설의 가장 근본적인 결함이다. 같은 사태를 놓고 “미국이 정보 공유를 협상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동맹 원칙에 부합하는가”라는 질문은 사설 어디에도 없다. 그 질문을 빼고 나면 남는 것은 분석이 아니라 훈계다.

정보 협력 복원이 필요하다면, 한국 정부가 그것을 추진해야 한다. 다만 그 과정이 상호 존중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미국의 불만을 무조건 수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같지 않다. 전자는 외교고, 후자는 굴종이다. 중앙일보가 두 가지를 구분하지 않는 한, ‘실용’이라는 단어는 설득력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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