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사설 분석] 한·미 정보 협력 복원이야말로 국익이자 실용

중앙일보는 지난 사설에서 “한·미 정보 협력 복원이야말로 국익이자 실용”이라고 썼다. 제목만 보면 그럴듯하다. 누가 한·미 동맹 복원에 반대하겠나. 그런데 사설을 다 읽고 나면 이상한 감각이 남는다. ‘국익’이라는 말이 자꾸 미국의 입장과 완벽하게 겹친다.

정동영 외교부 장관의 발언이 미국 측에서 문제가 됐다는 것, 이건 사실이다. 그런데 사설이 건너뛴 맥락이 하나 있다. 장관이 언급한 그 시설은, 한국 정부가 처음 꺼낸 이야기가 아니었다. 미국의 싱크탱크가 공개 보고서에서 먼저 다룬 내용이었다. 이미 공개 영역에 있던 정보를 언급한 것이 기밀 누설로 비화하는 구조를 사설은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미국이 불쾌감을 표했다는 결과만 부각하고, 장관 발언이 애초에 왜 나왔는지, 그 시설 정보가 어디서 비롯됐는지는 통째로 지워버렸다.

이 선택은 사고의 공백이 아니다.


맥락을 지우면 책임의 방향도 바뀐다. 중앙일보 사설이 노린 건 바로 그것이다. 한·미 사이에 불편함이 생겼다는 사실을 기정사실화한 뒤, 그 책임을 현 정부의 태도 문제로 귀결시키는 것. 이재명 대통령이 “사대적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을 사설은 동맹을 흔드는 신호처럼 배치했다. ‘사대적 태도 지양’이 반미 선언으로 독해되는 건, 오직 한 가지 전제가 깔릴 때만 가능하다. 미국에 고개를 숙이는 것이 곧 외교이고, 그것에 토를 다는 것이 곧 반동맹이라는 전제.

이 전제가 얼마나 낡은 것인지를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 2025년 현재,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전통적 의미의 동맹 신뢰보다 거래적 이해관계를 우선시하고 있다. 방위비 협상이 그렇고, 관세 압박이 그렇다. 미국이 원하는 것을 먼저 헤아려 몸을 낮추는 방식으로는 이 행정부와 협상이 안 된다는 걸, 외교 전문가들은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이미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중앙일보 사설은 2025년의 워싱턴을 2003년의 워싱턴처럼 다루고 있다.

한 가지 반론을 먼저 꺼낸다. “그래도 동맹국과의 갈등을 공개적으로 표면화하는 건 외교적으로 득보다 실이 크다. 내부 채널로 조용히 풀어야 한다.” 타당한 지적이다. 외교에서 공개 설전은 피하는 것이 원칙에 가깝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다시 보자. 문제의 발단이 된 발언은 장관의 공식 외교 채널이 아닌 자리에서 나왔고, 애초 공개 보고서에 기반한 내용이었다. 그 발언이 외교 갈등으로 번진 과정 자체가 이미 비정상적이다. 조용히 풀어야 할 갈등과, 갈등이라는 외양으로 프레이밍된 상황은 다르다.


중앙일보 사설의 진짜 설계를 읽으려면 마지막 문단을 봐야 한다. 사설은 “정보 협력 복원”을 촉구하면서, 그 복원의 전제 조건으로 현 정부가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쓴다. 복원의 책임을 한국 정부에만 지운다. 미국 측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이 갈등의 원인 제공에 미국이 기여한 부분은 없는지에 대해서는 한 줄도 없다. 동맹은 쌍방이지만, 사설 안의 동맹은 일방이다.

이것이 ‘실용’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굴종 외교론의 문법이다. 실용의 외피를 두르되, 실질은 “미국이 불편해하면 한국이 양보해야 한다”는 방정식이다. 이 방정식은 과거에도 반복됐다. 미국산 쇠고기 협상 때, 사드 배치 결정 때, 지소미아 종료 번복 압박 때. 그때마다 같은 언론들이 같은 프레임으로 같은 결론을 냈다. 미국이 원하면 우리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

실용은 국익을 계산하는 것이다. 국익 계산이 항상 미국의 요구와 일치한다면, 그건 계산이 아니라 순응이다. 동맹 유지는 중요하다. 그러나 동맹 유지의 방식에는 대화, 협상, 그리고 필요하면 입장 표명이 포함된다. 입장 표명을 동맹 훼손으로 처리하는 언론이 있다면, 그 언론이 실제로 지키려는 것이 동맹인지 위계인지는 물어볼 필요가 있다.

중앙일보 사설이 제목에 쓴 “국익”이라는 단어는 틀리지 않았다. 다만 그 국익이 누구의 국익인지, 글을 다 읽고 나면 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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