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사설 분석] [사설] 우크라에 사정해서라도 드론전 배울 처지 아닌가

조선일보 사설이 올라온 것은 2026년 6월 초, 한국과 우크라이나 사이에 외교적 파열음이 터지고 나서였다. 제목부터 강렬했다. “우크라에 사정해서라도 드론전 배울 처지 아닌가.” 읽는 사람이 무릎을 탁 칠 것 같은 문장이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이 사설이 설정한 장면은 이렇다. 한국이 드론 기술 습득이라는 실익 앞에서 외교적 자존심을 내세우며 발을 빼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감정적으로 대응해 소중한 안보 협력 기회를 걷어차고 있다. 우크라이나 측이 “외교가 감정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했을 때, 사설은 그 발언을 성숙한 태도의 증거로 띄웠다. 이성 대 감정, 실리 대 자존심이라는 구도를 짠 것이다.

그런데 이 구도에는 출발점이 빠져 있다.

이번 갈등의 발단은 우크라이나가 양국 간 비공개 합의를 먼저 어긴 데서 시작됐다. 한국 정부가 항의하자, 우크라이나 측은 그 합의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인했다. 대사 소환은 그 이후에 나온 조치다. 외교에서 합의를 파기한 뒤 그 합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비록 약소국의 일이라 해도 주권 침해에 해당한다. 한국 정부가 항의한 것은 “감정”이 아니라 외교의 기본 원칙에 따른 대응이었다.

조선일보 사설은 이 맥락을 통째로 생략했다. “외교가 감정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말한 쪽이 바로 합의를 파기하고 부인한 당사자라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 발언을 이성적 목소리로 소개한 것은 사실 관계를 뒤집은 셈이다.


물론 반론은 있다. 드론전의 실전 데이터는 현재 진행형 전쟁터에서만 얻을 수 있고, 우크라이나는 그 데이터의 유일한 실시간 창구다. 외교적 갈등이 안보 협력에 균열을 내면 궁극적으로 손해를 보는 것은 한국이라는 주장,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논리를 끝까지 밀면 이런 결론이 나온다. 상대가 합의를 깨고 그 사실을 부인해도, 우리에게 필요한 게 있으면 눈 감고 사정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의 제목 “사정해서라도”는 수사가 아니라 실제 주장이었던 셈이다.

그것이 외교라면, 그 외교에서 한국의 위치는 어디인가.

합의 파기를 묵인하는 선례를 만드는 것이 장기적으로 어떤 신호를 보내는지, 사설은 묻지 않는다. 드론 기술을 배우는 것과 외교적 원칙을 지키는 것이 반드시 양자택일의 문제인지도 따지지 않는다. “사정해서라도”라는 표현 속에 이미 답을 넣어두고, 독자를 그 방향으로 끌고 갔다.


윤석열 정부 시절 전황 분석팀 논란을 사설이 꺼낸 것도 눈에 걸린다. 그 논란은 당시 정부의 정보 수집 방식과 군사 협력 범위를 둘러싼 것이었다. 현재의 외교 갈등과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있는 사안이 아니다. 그런데 사설은 그것을 끌어와 “이미 협력이 있었는데 이번에 왜 이러냐”는 뉘앙스를 깔았다. 현 정부의 대응을 전 정부와의 단절, 즉 퇴행으로 그리려는 의도다.

이것이 조선일보 사설의 실제 설계다. 드론 기술 습득은 명분이고, 이재명 정부의 외교를 감정적·무능으로 낙인찍는 것이 목적이다. 안보 담론을 차용해 정권 비판을 우회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은 이 신문의 익숙한 수법이다.

그 방식 자체가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언론은 정부를 비판한다. 문제는 비판의 근거가 되는 사실 관계를 편집할 때다. 합의를 파기한 쪽의 행위를 지우고, 항의한 쪽을 감정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비판이 아니라 역전이다.

주권 침해에 항의하는 것을 “실익 없는 신경전”이라고 표현하는 언론이 있다면, 그 언론이 말하는 실익이 누구의 실익인지는 독자가 직접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그 판단을 방해하는 것이 바로 처음부터 맥락을 지운 프레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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