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2025년 6월 사설에서 민주당의 조희대 대법원장 국정조사 추진을 “탄핵 거리 찾기”로 규정했다. 문구 하나가 분석 전체를 압축한다. 탄핵 거리를 “찾는다”는 건,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그 행위 자체를 정치적 목적의 산물로 못 박는 것이다. 결론이 먼저 나오고 근거는 나중에 채워진다—사설이 비판하는 민주당의 방식이 아니라, 사설 자체가 그렇게 쓰였다.
민주당이 국정조사 사유로 명시한 것은 세 가지다. 조희대 대법원장의 대법관 후보 재제청 거부, 2024년 12월 계엄 선포 당일 대법원 간부회의 개최, 그리고 국감 증인 선서 거부. 이 중 하나라도 따져보려면 최소한 사실관계를 먼저 놓아야 한다. 하지만 조선일보 사설은 이 세 가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탄핵 거리 찾기”라는 표현으로 한꺼번에 처리한 뒤, 논의를 사법부 독립 대 입법부 월권이라는 구도로 재배치한다. 불편한 맥락을 제거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서술하는 것이다.
계엄 당일 대법원이 한 일
계엄 선포 당일, 대법원은 간부회의를 열었다. 이 사실 자체가 논란의 출발점이다. 회의에서 무슨 논의가 이루어졌는지 대법원은 공개하지 않았다. 계엄이라는 헌정 위기 상황에서 사법부 최고 기관이 어떤 판단을 했는지—혹은 하지 않았는지—를 국민이 알 권리가 있다는 것이 국정조사 요구의 실질적 근거다.
대법관 재제청 거부 문제도 단순하지 않다.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를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에서,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 재제청을 거부한다는 것은 사법부 내부 인사 구조에 실질적 영향을 미친다. 이것이 “사법부 독립”의 표현인지, 아니면 사법행정 권한의 남용인지는 따져볼 문제다. 국정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의 핵심은 바로 이 물음이다. 조선일보는 이 물음을 꺼내지 않는다.
여론조사 수치도 사설에 등장한다. 국정조사에 50.3%가 반대한다는 수치다. 어느 기관이 어떤 문항으로 설계한 조사인지는 명시되지 않는다. 문항 설계 방식에 따라 응답 분포가 달라진다는 것은 여론조사 방법론의 기초다. “국정조사에 찬성하십니까”와 “사법부 독립을 침해할 수 있는 국정조사에 찬성하십니까”는 같은 사안에 대한 다른 질문이다. 수치를 제시하면서 그 수치가 생산된 맥락을 지우면, 숫자는 근거가 아니라 장식이 된다.
사법부 독립론의 선택적 적용
조선일보의 사법부 독립 논리에는 타임스탬프가 없다.
2024년 12월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심판하던 시기, 조선일보는 헌재 결정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나. 보수 진영 일각에서 헌재 결정의 정당성 자체를 문제 삼는 목소리가 나올 때, 조선일보는 “사법부 독립”을 얼마나 일관되게 옹호했나. 더 직접적으로는, 윤석열 정부 시절 검찰이 특정 판결을 우회하거나 사법부와 갈등을 빚을 때, 같은 논리로 같은 수위의 사설을 썼나.
이 물음은 조선일보를 과거로 재판하자는 것이 아니다. 원칙의 적용이 일관된지를 묻는 것이다. 사법부 독립이 헌법적 가치라면, 그것은 어느 정부가 집권하든 동일하게 작동해야 한다. 민주당 정부가 사법부에 국정조사를 추진할 때는 “삼권분립 위협”이고, 다른 시기에는 침묵이었다면—그 원칙은 원칙이 아니라 포지셔닝이다.
반론도 있다. 입법부가 사법부를 국정조사 대상으로 삼는 것은 권력분립의 취지와 긴장 관계에 있다는 주장은 법학자들 사이에서도 진지하게 논의된다. 사법부의 독립성이 실질적으로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무조건 정치 공세로 환원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논리가 성립하려면 전제가 필요하다. 사법부는 견제의 대상이 아닌가. 삼권분립은 세 기관이 서로를 견제하는 구조이지, 그중 하나가 다른 두 기관의 감시를 면제받는 구조가 아니다. 사법부가 계엄 당일 무엇을 했는지, 대법원장이 왜 인사 관련 결정을 거부했는지를 확인하려는 시도 자체가 위헌이라고 주장하려면, “사법부는 국민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 결론을 수용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
무엇을 봉쇄하려는가
조선일보 사설의 실질적 효과는 국정조사의 문턱을 높이는 것이다. “탄핵 거리 찾기”라는 프레임이 확산되면, 국정조사 자체가 정치적 행위로 낙인 찍히고, 그 안에서 나올 수 있는 어떤 사실도 정파적 의도의 산물로 선제적으로 기각된다. 조사가 시작되기 전에 조사 결과의 신뢰성을 무너뜨리는 방식이다.
이 전략은 새롭지 않다. 권력에 대한 조사가 시작될 때, 조사 자체의 동기를 문제 삼는 것은 견제를 회피하려는 권력이 전통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그 논리가 언론을 통해 유통될 때, 언론은 중립적 보도자가 아니라 그 전략의 확성기가 된다.
사법부 독립은 진지하게 다뤄야 할 헌법적 가치다. 하지만 그 가치를 동원해서 사법부에 대한 모든 질문을 차단하는 것은, 독립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불투명성을 지키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정말로 사법부를 걱정한다면, 계엄 당일 대법원 간부회의에서 무슨 논의가 이루어졌는지 독자적으로 취재해서 보도하면 된다. 국정조사가 필요 없도록.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