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이 말한 것과 중앙일보가 받아쓴 것 사이
유시민이 이재명 대통령을 윤석열에 비유했다. 중앙일보는 이 발언을 제목으로 올렸다. 조회수는 빠르게 쌓였다.
이 세 문장이 이어지는 방식, 조금 낯설지 않은가.
유시민이 실제로 한 말부터 보자. 그는 유튜브 방송에서 “뉴이재명 스피커들이 활동할수록 이 대통령이 고립된다”고 했다. 지지율이 30%대로 내려앉은 시점에 나온 발언이고, 핵심은 이거다. 중도 확장을 명분으로 기존 지지층을 밀어내다가 결국 양쪽을 다 잃는 구도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 그는 이것을 “자기 집을 해체한 윤석열과 같은 방식”이라고 표현했다.
비판의 방향은 분명하다. 여권 외부를 향한 공격이 아니라, 이재명 진영 내부의 전략 실패에 대한 진단이다.
그런데 중앙일보 제목은 “李대통령 또 때린 유시민”이었다.
“또 때렸다”는 표현에는 전제가 깔려 있다. 유시민이 이재명 정부의 반복적 비판자이며, 이번 발언 역시 그 연장선에서 읽혀야 한다는 것. 그 전제를 깔면, 비판의 구체적 내용은 증발한다. 남는 건 “진보 진영 내부 갈등”이라는 그림 한 장이다.
보수 언론이 진보 내부의 자기비판을 다루는 방식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내용보다 균열을 부각한다. 비판의 논거를 검토하는 대신, 발언자와 대상 사이의 관계를 드라마화한다. “유시민 vs. 이재명”이라는 대립 구도를 세우면, 독자는 자연스럽게 둘 사이의 긴장에 집중하게 된다. 유시민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그 지적이 타당한지, 이재명 정부가 실제로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는 그 구도 안에서 부차적인 것이 된다.
이건 취재를 안 한 게 아니다. 의도적인 편집이다.
물론 반론은 있다. 중앙일보가 보수 언론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보도를 무효화할 수는 없다. 유시민의 발언이 실재하고, 그것을 보도하는 행위 자체가 문제일 수는 없다. 진보 언론도 국민의힘 내부 갈등을 비슷한 방식으로 소비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가능하다.
맞다. 그 지적은 부분적으로 유효하다.
하지만 지금 따지려는 건 중앙일보가 보도할 자격이 있느냐가 아니다. 이 보도가 어떤 프레임으로 작동하고 있느냐, 그리고 그 프레임이 실제로 무엇을 지우느냐다.
유시민의 발언은 “이재명이 윤석열처럼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이재명이 윤석열이 저질렀던 실수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어서 위험하다”는 경고다. 이 둘은 문장 구조가 같아 보여도 정치적 의미가 전혀 다르다. 전자는 도덕적 등가 논리고, 후자는 전략적 우려다. 중앙일보가 선택한 건 전자의 언어였다.
유시민의 비판이 유효한가, 유효하지 않은가. 그건 별개의 논쟁이고, 충분히 해볼 만한 논쟁이다.
지지층을 결집시키면서 동시에 중도로 확장하는 건 어떤 정권도 쉽게 풀지 못한 문제다. 이재명 정부가 그 균형을 제대로 잡고 있는지, 아니면 유시민의 말처럼 한쪽을 너무 빠르게 놓아버리고 있는지, 지지율 30%대라는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진지하게 따져봐야 한다.
그 논쟁은 해야 한다. 그리고 진보 진영 안에서 그 논쟁을 하는 것은 건강한 일이다.
그런데 중앙일보가 이 발언을 소비하는 방식은, 그 논쟁을 더 선명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이재명=윤석열”이라는 등호를 심어놓고, 진보 진영 내부가 자체 붕괴하고 있다는 인상을 남기는 데 집중한다.
진보 내부의 자기 성찰과, 보수 언론이 그 성찰을 편집해서 만들어내는 공격 소재는 출발점이 같아도 전혀 다른 물건이다. 전자는 논쟁의 재료고, 후자는 프레임의 결과물이다. 독자가 이 둘을 구분하지 않으면, 결국 중앙일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읽게 된다.
유시민의 말을 읽을 때, 제목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