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수청장이 지난 국무회의에 배석했다. 법무부장관도 아니고, 행정각부의 장도 아닌, 수사기관의 수장이 대통령 주재 회의 테이블에 앉은 것이다.
정부는 근거를 댔다. 국무회의법 제11조는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 관계 기관장을 배석시킬 수 있다고 규정한다.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 위법 논란을 꺼낼 자리가 아니다.
그런데 역대 정권에서 검찰총장이 국무회의에 정례 배석한 전례는 없다. 공식 배석은 특별한 안건이 있을 때, 예외적으로, 일회성으로 이루어졌다. 이것은 단순한 관행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수사권을 쥔 기관과 행정부 수반 사이에 눈에 보이는 거리를 두겠다는, 굳이 말로 적지 않아도 이해되는 헌법적 감각이었다.
야당의 공세는 틀렸지만, 그게 이 문제의 끝은 아니다
국민의힘은 중수청장의 배석을 보자마자 “공소 취소 밑작업”이라고 규정했다. 이 프레임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국무회의 배석이 특정 사건의 공소 취소와 어떤 직접적 인과관계를 갖는지, 야당은 설명하지 않는다. 수사기관장이 행정 현안 보고를 위해 회의에 참석하는 것과, 법원에서 진행 중인 형사 사건의 공소를 취소하는 것은 절차적으로도, 권한 구조상으로도 별개다. 이 주장은 반박할 가치도 별로 없는 수준의 정치 공세다.
그러나 야당의 공세가 틀렸다는 사실이, 배석 자체가 괜찮다는 결론으로 직행하지는 않는다. 공격자의 논리가 허술하다고 해서 방어자의 선택이 옳은 것은 아니다. 이 두 판단은 독립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검찰의 공소 취소 논란이 불거졌을 때 직접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 수사기관이 공소를 취소하면 오해를 살 수 있다고. 그 발언의 핵심은 법적 가능 여부가 아니라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였다. 실제로 그 발언은 설득력이 있었다. 수사기관의 독립성은 선언이 아니라 외관으로 증명된다. 국민이 의심하는 구조를 만들지 않는 것, 그 자체가 신뢰의 기초다.
그런데 그 말을 한 같은 대통령이 수사기관장을 매주 국무회의 테이블에 앉혔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것은 법의 문제가 아니라 일관성의 문제다. 공소 취소를 둘러싼 외관상의 오해를 경계했던 논리를, 중수청장의 정례 배석에는 적용하지 않은 셈이다. 둘 다 “법적으로는 문제없다”는 답변이 가능한 사안이고, 둘 다 국민의 시선이라는 변수를 피할 수 없는 사안이다.
검찰개혁의 정당성이 걸려 있다
중수청은 검찰개혁의 산물이다.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분산하고, 수사와 기소의 분리를 제도화하며, 정치 권력으로부터 수사기관의 독립성을 보장하겠다는 오랜 진보 진영의 과제가 법으로 구현된 결과다. 그 개혁의 정당성은 어디서 나오는가. 중수청이 실제로 독립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국민이 체감하는 데서 나온다.
중수청장이 매주 대통령 옆에 앉는다. 그 장면이 반복될수록, 개혁의 명분은 조금씩 소모된다. 이것은 중수청장이 대통령의 지시를 받는다는 주장이 아니다. 실제로 어떤 지시가 오갔는지와 무관하게, 그 장면 자체가 독립성에 대한 의심을 자라게 하는 토양이 된다는 뜻이다.
수사기관의 독립성은 결국 외관의 싸움이다. 구조가 독립적으로 보여야 한다. 절차가 독립적으로 보여야 한다. 사람이 독립적으로 보여야 한다. 내부에서 아무리 독립적으로 작동하더라도, 외부에서 그렇게 읽히지 않으면 신뢰는 쌓이지 않는다.
선별 참석이 답이다. 특정 안건이 있을 때, 명시적 이유와 함께, 예외적으로 배석한다. 역대 정권이 관행으로 지켜온 그 거리감을 복원하는 것이 검찰개혁을 지키는 더 단단한 방법이다. 개혁의 성과를 오해로부터 방어하는 가장 영리한 선택은, 오해가 자라날 구조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법이 허용한다고 해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신뢰가 걸려 있을 때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