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민주당이 밀어붙인 의제 목록을 시간순으로 늘어놓으면, 어떤 패턴이 보인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권한 확대, 법무부 장관 임명, 중수청장 인사, 그리고 최근의 대법원장 탄핵 추진. 하나하나는 각기 다른 명분을 달고 있지만, 공통점은 하나다. 매번 여론 조사 지지율이 뚝뚝 떨어지는 시점에 전면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우연치고는 너무 일관된 패턴이다.
정청래 의원이 대법원장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한 건 지난달 이후다. 그런데 그가 민주당 대표로 당을 이끌던 시기, 같은 대법원장이 재임 중이었고, 동일한 법적 논거가 이미 당내에서 검토됐다. 그때 왜 추진하지 않았을까. 정 의원 측은 “여건이 되지 않았다”고 설명하지만, 더 솔직한 표현이 있다. 그때는 그렇게 했을 때 자신이 얻을 것이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집권 초기의 개혁 동력을 이어가야 하는 시점에, 이 사안들을 밀어붙이는 쪽이 당내에서 ‘선명성’을 선점한다. 개혁의 기수가 된다. 대통령이 주저하면 “배신”이 되고, 대통령이 따르면 여론의 화살이 대통령에게 향한다. 어느 쪽이든 이득을 보는 사람이 대통령 본인이 아니라는 건, 굳이 복잡한 분석 없이도 보인다.
진보 언론이 이 구도를 돕고 있다
더 불편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일부 진보 매체와 논객들이 이 흐름에 정당성을 공급하고 있다. “대통령이 개혁을 두려워하고 있다”, “당이 오히려 더 앞서 있다”, “이재명은 민심을 오독하고 있다”는 식의 논평들이 특정 채널과 유튜브를 통해 반복 순환된다.
이것이 왜 문제냐면, 이 서사가 정확히 보수 언론이 원하는 프레임과 구조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이재명 정부가 독주한다”고 공격하고, 일부 진보 유튜버는 “이재명이 개혁에 소극적이다”라고 다른 방향에서 공격한다. 표면적 방향은 반대지만, 두 공격 모두 대통령을 지지층과 분리시키는 효과를 낸다. 지지층 내부에서 “이 대통령이 제대로 하고 있는가”라는 의심이 심어지는 순간, 개혁의 동력은 외부 저항이 아니라 내부 균열로 소진된다.
그것이 설계된 것이든 우연이든, 결과는 같다.
물론 반론을 들어보자. “대통령이 여론에 끌려다니기만 하면 개혁은 언제 하나”라는 주장이다. 일리가 없지 않다. 개혁은 원래 저항이 따르고, 인기와 개혁이 항상 함께 가지는 않는다. 대통령이 여론조사 수치에 매몰되어 결단을 미루는 것도 분명히 비판받아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 반론이 성립하려면 조건이 있다. 지금 민주당이 밀어붙이는 의제가 실제로 일관된 개혁의 철학을 갖고 있어야 한다. 대법원장 탄핵은 정말 사법 독립을 위한 구조 개혁인가, 아니면 정치적 불편함을 제거하기 위한 절차인가. 중수청장 인사는 수사 기관의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다음 선거를 위한 포석인가. 이 질문에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지 못하는 한, “개혁의 선명성”이라는 말은 방패가 아니라 구호에 그친다.
여론을 잃은 개혁은 두 가지 경로 중 하나로 간다. 하나는 그대로 밀어붙여 강행된 법률과 인사만 남기고 다음 선거에서 뒤집히는 것, 다른 하나는 결국 타협하면서 애초의 명분마저 잃는 것이다. 어느 쪽도 개혁의 완성이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금 해야 할 판단은, 당내 선명성 경쟁에 끌려가느냐 아니면 스스로 의제의 속도와 순서를 통제하느냐다. 국민의 지지가 집권 세력의 정치적 자산인 동시에 개혁의 실질적 동력이라는 것을, 1987년 이후 어떤 정부도 이 원칙을 무시하고 개혁을 지속한 사례는 없다는 것을, 대통령이 모를 리 없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건 “더 빠르게”가 아니라 “더 똑똑하게”다. 개혁의 방향이 아니라 개혁의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 그 주도권은 당내 목소리가 아니라 국민과의 직접 소통에서 나온다.
덫은 이미 놓여 있다. 대통령이 그것을 보고 있는지가 지금의 핵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