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이언주 의원이 국회 발언을 통해 신라젠을 문재인 정부와 연결 짓기 전까지 신라젠은 그저 작전 세력이 끼어든 바이오 사기주였다. 적어도 최욱의 논리를 따라가면 그렇다. 매불쇼에서 최욱은 이 프레임을 꽤 단호하게 제시했다. 신라젠과 문재인 정부를 엮은 것은 이언주가 처음이고, 그 전까지는 정치화된 사안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주장이 성립하려면 2017년 언론 보도들을 전부 없애야 한다.
신라젠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에 코스닥에 상장됐다. 주가가 본격적으로 급등한 것은 2017년 상반기,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다. 당시 증권 전문지들은 신라젠을 “문재인 정부 바이오 수혜주”로 명시적으로 분류했다. 문 정부의 바이오헬스 육성 정책 발표 이전부터 이미 ‘테마주’로 소비되고 있었고, 언론은 이를 정부 기조와 연결 지어 보도했다. 이언주의 2019년 발언이 프레임의 기원이라는 주장은, 2017년부터 쌓인 보도 맥락 앞에서 버티기 어렵다.
물론 이언주가 그 프레임을 정치 공세용으로 증폭시킨 것은 사실이다. “신라젠 투자자들이 청와대 행사에 초청받았다”는 식의 주장은 전형적인 야당의 먼지 던지기였다. 이언주의 의도를 선의로 읽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프레임을 정치적으로 악용했다는 것과, 그 프레임 자체를 이언주가 발명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명제다. 최욱은 이 둘을 합쳐버렸다.
진보의 정치적 기억은 왜 이렇게 선택적인가
신라젠 사태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2019년의 공기를 떠올릴 수 있다.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던 논객들과 유튜버들 중 상당수가 신라젠 수사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투자자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주가 조작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이건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진영을 가리지 않았다. 그때 그 목소리들이 지금은 잠잠하거나, 일부는 방향을 틀었다.
왜인가. 신라젠이 현재 정치 지형에서 다시 소환된 맥락을 보면 짐작이 간다. 국민의힘과 일부 보수 언론이 신라젠을 다시 꺼내 든 것은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을 압박하는 서사와 연결하려는 시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 시도가 정치적 공세라는 사실은 맞다. 그러나 그 공세에 맞서는 방법이 신라젠 자체의 사실관계를 흐리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최욱의 문제는 신라젠을 방어했다는 것 자체가 아니다. 사실관계가 틀린 방식으로 방어했다는 것이다. 이언주 이전에는 신라젠이 정치화되지 않았다는 주장은, 2017년 당시 바이오 테마주 보도 맥락을 모른다면 나올 수 없는 말이다. 알고도 그랬다면 더 심각하고, 몰랐다면 그 자신감이 문제다.
정치 해설자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조건은 자기 진영의 이익과 팩트가 충돌할 때 팩트 쪽을 붙드는 것이다. 그것이 어렵기 때문에 가치 있는 일이다. 보수 언론과 야당이 신라젠을 정치 무기로 쓴다는 의심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 의심을 논증하는 방법은 그들이 제시한 주장의 논리적 허점을 파고드는 것이지, 역으로 틀린 주장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다.
신라젠 수사를 촉구하던 목소리가 신라젠 방어로 돌아선 것, 그 전환의 이유가 팩트의 변화가 아니라 정치 포지션의 변화라면, 그것은 보수 진영의 정략적 프레이밍과 구조적으로 다르지 않다. 비판하는 방식이 비판 대상을 닮을 때, 그 비판은 설득력을 잃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