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 물어보고 수사기관장 국무회의 배석
중앙일보 사설이 이재명 대통령을 조롱하는 데 쓴 소재는 구글의 AI 서비스 ‘제미나이’였다. 대통령이 SNS에 직접 올린 내용인데, 중수청장 국무회의 배석 의무화가 위헌인지를 제미나이에 물었더니 “위헌 소지가 있다”는 취지의 답변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이 장면 하나를 잡아 “AI로 국정 운영하는 대통령”이라는 그림을 완성했다.
그런데 이 사설의 논리 구조를 잠깐 뜯어보면, 뭔가 이상하다.
중앙일보는 “기자가 반대 방향으로 질문하니 반대 답이 나왔다”는 사실도 함께 소개한다. AI는 질문에 따라 다른 답을 준다. 그러니 대통령이 인용한 답변은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얼핏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런데 이 반론은 스스로 무너진다. 질문 방식에 따라 답이 달라지는 건 AI만이 아니다. 헌법학자도 어떤 쟁점을 전면에 두느냐에 따라 결론이 갈리고, 헌법재판소 결정문도 소수 의견과 다수 의견이 갈린다. 중앙일보 사설도 그 자체로 하나의 관점이 투영된 ‘질문에 따른 답변’이다. 그러니 “AI는 질문에 따라 달라지므로 못 쓴다”는 논리를 끝까지 밀면, 모든 법적 판단 도구가 함께 무력화된다.
이 사설이 비껴간 것
중앙일보 사설 어디에도 ‘수사기관장 국무회의 배석 의무화’가 실제로 위헌인지 합헌인지에 대한 실질적 법리 검토는 없다. 대통령의 행정감독권이 어디까지인지, 국무회의 구성원과 배석자의 법적 지위 차이가 무엇인지, 비교법적으로 다른 나라 사례는 어떤지. 이 질문들이 이 사안의 핵심인데, 사설은 그쪽으로 한 발짝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 법리 싸움에 정면으로 들어가면, 중앙일보가 원하는 결론이 쉽게 나오지 않을 수 있다. 대통령의 행정 각부 감독권은 헌법 제66조와 제86조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국무회의 배석자 범위는 법률과 시행령의 영역이다. 위헌이라는 주장도, 합헌이라는 주장도 각각 근거가 있다. 이 복잡한 지형을 탐색하는 대신, 사설은 대통령이 AI를 썼다는 사실로 직행했다.
논거가 약할수록 이미지 공격이 선명해진다. 이건 새로운 공식이 아니다.
물론 이 지점에서 반론이 가능하다. 대통령이 SNS에 AI 답변을 공개적으로 올리며 정치적 논거로 삼은 행위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느냐고. 맞다, 그 부분은 따져볼 수 있다. 현직 대통령이 첨예한 법적 쟁점에 대해 AI 답변을 공개 게시한 건 적어도 스타일 측면에서 논란 지점이 된다. 대통령의 공식 의견 표명 방식으로 적절한가라는 질문은 합당하다.
그런데 중앙일보의 사설은 그 질문을 하지 않았다. “이런 방식이 적절한가”를 따지는 게 아니라, “AI에 물어보고 국정을 운영하는 무능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심는 데 집중했다. 전자는 정당한 비판이고, 후자는 이미지 조작이다. 이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목적지가 다르다.
전자의 비판은 대통령의 소통 방식 개선을 요구한다. 후자는 대통령이 구제 불능의 인물임을 인상으로 각인시키는 걸 목표로 한다. 중앙일보 사설이 이 중 어느 쪽에 서 있는지는, 사설이 ‘법리 검토’를 전혀 담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로 충분히 답이 나온다.
프레임이 논리를 대체할 때
보수 언론이 민주당 정부를 공격할 때 자주 쓰는 방식이 있다. 정책의 내용보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의 이미지를 흔드는 것이다. 상대의 주장에 반박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주장을 제기하는 방식을 우스꽝스럽게 보이게 만드는 것. 이렇게 하면 이득이 있다. 논거를 치밀하게 구성하지 않아도 되고, 독자는 내용보다 인상으로 판단하게 된다.
이번 사설도 같은 구조다. 중수청장 국무회의 배석이 위헌이냐 합헌이냐는 중요한 헌법 쟁점이다. 그 쟁점에 대해 대통령이 AI를 대화 도구로 활용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소통했다. 여기서 공론이 다뤄야 할 건 배석권의 법적 성격이다. 중앙일보는 그 쟁점을 뒤로 밀고, AI를 앞에 세웠다.
결과적으로 이 사설을 읽고 나서 독자가 갖게 되는 건, 중수청장 배석 문제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이 대통령은 AI나 믿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다. 그게 이 사설의 진짜 생산물이다.
헌법 논쟁을 이미지 전쟁으로 바꾸는 것. 이게 2026년 한국 보수 언론 사설이 작동하는 방식이고, 중앙일보는 그 방식에 충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