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사설 분석] 호남반도체 방해하는 두 장관, 대통령은 놔둘 건가

조선일보 사설 하나가 광주를 끌어들였다.

2025년 5월, 조선일보는 “호남 반도체를 방해하는 두 장관”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고용노동부 장관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각각 주 52시간 특례 논의와 원전 공론화 절차를 ‘질질 끌고’ 있어서, 광주 반도체 클러스터가 차질을 빚고 있다는 요지였다. 표면만 보면 지역 경제를 걱정하는 충정 어린 논평처럼 읽힌다.

그런데 조선일보가 호남 민심을 걱정한다는 게 언제부터였나.

광주는 왜 지금 소환됐나

이 사설의 구조를 뜯어보면 논리보다 전략이 먼저 보인다. 광주라는 지명을 전면에 세운 것 자체가 첫 번째 장치다. 호남은 이재명 정부의 핵심 지지 기반이다. 그 지역의 반도체 프로젝트가 늦어지고 있고, 그 책임이 이재명 정부의 장관들에게 있다는 서사를 세우면, 지지층 이탈을 유도하는 프레임이 완성된다. 조선일보가 호남 경제를 염려한다기보다, 호남을 지렛대로 삼아 현 정부를 흔들려는 것이다. 이걸 모르는 독자는 없지만, 활자로 박혀 있으면 프레임은 작동한다.

사설이 겨냥한 두 가지 쟁점도 각각 결론이 미리 정해져 있다. 노동부는 주 52시간 특례를 사회적 대화로 논의하는 중이고, 산업부는 원전 확대를 공론화 과정에 부치고 있다. 조선일보는 이 두 행위를 “시간 끌기”와 “절차 핑계”라고 명명한다. 명명이 곧 판결이다. 논의 자체가 잘못이라는 전제가 이미 들어가 있다.

절차가 민주주의라는 사실

주 52시간 특례를 노사 합의 없이 밀어붙이면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성과연봉제를 강행했을 때 결국 법원에서 뒤집혔고, 윤석열 정부에서 의대 증원을 일방 통보했을 때 의료 공백이 1년 넘게 이어졌다. 절차를 건너뛴 행정이 어떤 뒤처리 비용을 치르는지, 교훈이 없지 않다.

노동 현장의 구조를 바꾸는 의사결정에서 노동자를 배제하는 것은 “빠른 결단”이 아니라 “나중에 뒤집힐 일방 통보”에 가깝다. 사회적 대화가 느리다는 비판은 맞다. 그런데 그 느림이 문제라면 답은 대화를 더 효율적으로 구조화하는 것이지, 대화 자체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원전 공론화에 대해 사설은 “국민 80%가 찬성한다”는 숫자를 내세웠다. 이 숫자가 어느 기관이 어떤 문항 설계로 뽑아낸 것인지 사설은 밝히지 않는다. 원전 찬반 설문은 문항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갈린다. “전력 안정을 위해 원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와 “방사성 폐기물 처리 비용을 포함한 원전 총비용을 고려할 때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는 전혀 다른 질문이다.

설령 80%가 정확한 숫자라 해도, 그것이 공론화 절차를 생략해도 된다는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공론화는 여론조사 결과를 확인하는 절차가 아니다. 이해당사자들이 구체적인 조건과 위치를 두고 합의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충남 주민이 특정 부지에 원전을 짓는 것에 찬성하는지는 전국 80%로 덮을 수 없는 문제다. 조선일보는 이 구별을 고의적으로 뭉갠다.

사설이 실제로 요구한 것

사설의 표면적 주장은 “두 장관이 광주 반도체를 방해하고 있다”지만, 실제로 요구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노동 규제 완화, 다른 하나는 원전 확대 가속이다. 이 두 가지는 조선일보가 지난 10년간 일관되게 밀어온 의제다. 광주 반도체는 그 의제를 현 정부에 들이미는 용기일 뿐이다.

이 구도를 인정하고 보면, 사설의 논리는 아주 단순하다. “현 정부가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지지층 지역 경제가 피해를 본다”는 압박이다. 이건 정책 논쟁이 아니라 협박에 가까운 프레임이다.

반론을 미리 끌어오자. 조선일보 사설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반도체 산업에서 전력 공급이 병목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실제다. TSMC가 공장 입지를 결정할 때 안정적인 전력 인프라를 최우선으로 본다는 것도 맞다. 노동 유연성이 일부 첨단 제조업에서 경쟁 조건이 된다는 주장도 전면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 우려가 맞다고 해서, 해법이 “절차 없이 밀어붙여라”가 되는 건 아니다. 우려가 타당한 것과 제안이 타당한 것은 다른 문제다. 조선일보 사설은 이 두 단계를 붙여버린다. 우려가 맞으니 해법도 우리 것이 옳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속도를 팔아 방향을 사는 방식

조선일보가 자주 쓰는 수사법이 있다.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 “지금 결단하지 않으면 기회를 잃는다”. 이번 사설도 같은 구조다. 속도의 언어로 방향의 선택을 포장한다. 빨리 가야 한다고 강조하면, 어디로 가느냐는 질문이 뒤로 밀린다.

광주 반도체 클러스터가 실제로 어느 지점에서 지연되고 있는지, 그 지연이 장관 두 명의 태도 때문인지 아니면 부지 확보나 민간 투자 유치의 문제인지는 사설이 분석하지 않는다. 분석했다면 사설의 논지가 흔들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가 반도체 산업 육성에 소극적이라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반도체 특별법을 통해 세액공제와 인프라 지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노동과 에너지 문제를 대화 없이 해결하려는 게 아니라, 대화를 통해 지속 가능한 합의를 만들려는 것이다. 그 방식이 느리다는 비판은 받을 수 있다. 그 방식이 틀렸다는 주장은 다른 문제다.

조선일보는 두 개를 같은 것으로 쓴다. 그것이 이 사설에서 가장 주의 깊게 봐야 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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