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사설 분석] 국민 아닌 지지층만 보는 대통령 ‘SNS 진영 정치’

조선일보가 6월 중순 사설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SNS 사용 방식을 정면 비판했다. 요지는 이렇다. 대통령이 SNS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지지층만을 향한 진영 정치’를 하고 있으며, 이는 전 국민을 대표해야 할 대통령의 위상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읽다 보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 같다. ‘대통령이 SNS로 팬덤 정치를 한다’는 비판은 언뜻 중립적인 통치론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설에는 논리의 결이 하나 어긋나 있다. 그 어긋남이 이 글의 출발점이다.


조선일보 사설이 설정한 프레임은 ‘소통의 형식 문제’다. 대통령이 SNS를 쓴다는 행위 자체를 문제 삼는다. 하지만 이 프레임 안에서 조용히 감춰진 전제가 하나 있다. 대통령이 언론을 통하지 않고 직접 국민과 연결되는 것이 그 자체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가정이다.

이 전제가 왜 문제인지는 간단한 질문 하나로 드러난다. 조선일보는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가 언론 브리핑을 통해 정보를 통제했을 때 그 방식을 ‘국민과의 소통 부재’라고 비판했는가. 노무현 대통령이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직접 발언했을 때는 그것을 ‘팬덤 정치’라고 규정했는가. 기억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조선일보는 전자를 문제 삼은 적이 드물고, 후자는 당시에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패턴이 보인다.


의제 설정권의 문제

언론학에서 ‘의제 설정(agenda setting)’은 미디어가 무엇을 중요하게 다루느냐로 여론의 관심 방향을 결정한다는 개념이다. 수십 년간 한국 정치 의제의 상당 부분은 조선·중앙·동아 세 신문사의 편집국에서 결정됐다. 대통령이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맥락에서 했는지, 어떤 뉘앙스로 전달되는지—이 모든 것이 이 신문들의 언어로 재가공되어 독자에게 닿았다.

SNS는 그 구조를 부수는 도구다. 대통령이 자신의 계정에 직접 글을 올리면, 조선일보의 편집국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해석이 끼어들기 전에 발언 자체가 먼저 퍼진다. 보수 언론의 입장에서 이것은 단순한 소통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권력 배치의 변화다. 자신들이 수십 년간 독점해온 ‘게이트키핑’ 기능이 흔들리는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이 SNS를 ‘진영 정치의 도구’로 규정하는 것은, 그 불편함을 공익의 언어로 포장한 것에 가깝다.


반론도 있다. SNS 소통이 필터 버블을 강화한다는 지적은 실제로 유효하다. 알고리즘 기반 플랫폼에서 대통령의 발언은 이미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이 도달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닿지 않는다. 이건 플랫폼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콘텐츠 생산자로서 대통령이 그 한계를 의식해야 한다는 지적은 충분히 경청할 수 있다.

그런데 조선일보 사설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단순히 “필터 버블을 경계하라”는 게 아니라, “SNS 소통 방식 자체가 진영 정치”라는 결론으로 끝까지 밀고 간다. 이 두 주장은 다르다. 전자는 미디어 생태계에 대한 비판이고, 후자는 직접 소통 자체에 대한 거부다.

조선일보가 말하고 싶은 건 후자다. 그리고 그것이 이 사설의 결정적인 과잉이다.


트럼프는 집권 내내 트위터로 정책을 발표하고, 언론을 ‘가짜 뉴스’라고 공격하며 팬덤을 결집했다. 조선일보는 그것을 두고 ‘SNS 진영 정치’라며 이재명 대통령에게 적용하는 것과 같은 강도로 비판했는가. 아니다. 일론 머스크는 자신이 소유한 플랫폼에서 정치 발언을 서슴없이 쏟아내고, 특정 정파를 지지하는 알고리즘 조작 논란까지 불거졌다. 조선일보는 그 문제에 얼마나 집요했는가.

이재명 대통령의 SNS 사용이 비판받을 내용을 담고 있다면, 그 내용을 비판해야 한다. 외교 발언이 부적절했다면 그 발언의 외교적 함의를 따져야 하고, 특정 사안에서 사실 관계가 틀렸다면 그것을 지적하면 된다. 그런데 사설은 내용이 아니라 형식을 문제 삼는다. ‘SNS를 통한 소통’이라는 행위 자체를 타깃으로 잡는 것이다.

내용 비판이 아니라 채널 비판. 이 선택이 의도적이라는 게 나의 독해다.


왜 직접 소통이 필요해졌는지를 되묻는 것이 순서다. 주요 보수 언론들이 특정 정치 세력의 사법 리스크를 수년간 증폭 보도하고, 정책보다 인물을 타깃 삼아 의제를 구성해온 역사 속에서, 정치인이 언론의 언어를 불신하고 직접 채널을 선택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이해 가능한 맥락이다. 물론 그 선택이 정치적으로 올바른지, 통치자로서 책임 있는 방식인지는 별도의 평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평가는 “SNS를 쓰지 마라”가 아니라 “SNS에서 무슨 말을, 어떻게, 어떤 책임감으로 하느냐”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은 그 질문을 하지 않았다. 형식 비판으로 내용 비판을 대체했다. 그것이 이 사설의 논리적 결함이고, 동시에 이 사설이 공익적 비판보다 기득권적 불편함에 가깝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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