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국감장에서 직접 입을 열었다. “계엄 협조는 사실이 아니다.” 업무추진비 논란에는 “저는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깔끔한 해명이다. 아니, 적어도 중앙일보 사설은 그렇게 정리했다.
그런데 중앙일보가 전달한 것과 실제로 국감장에서 확인된 것 사이에는 작지 않은 간극이 있다.
조 대법원장은 계엄 당시 대법원이 간부회의를 소집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인하지 않았다. 계엄사 측이 대법원에 인원 파견을 요구하고, 명단 제출을 요청했다는 것도 그 자신이 인정했다. “막았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고, 중앙일보 사설은 바로 그 결론만을 제목으로 가져갔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계엄사가 대법원에 접촉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심각한 문제다. 군사 계엄을 집행하는 기관이 사법부 수장실 근처에까지 닿아 있었다는 건, 막았느냐 협조했느냐 이전에 먼저 해명되어야 할 구조적 사건이다. 그 접촉의 경로는 무엇이었나. 누가 먼저 연락했나. 요구를 받은 시점과 거절한 시점 사이에 어떤 내부 논의가 있었나. 사설에는 그 어떤 질문도 없다. “막았다”는 결론만 있을 뿐, 왜 막아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질문은 사설 어디에도 자리를 찾지 못했다.
이것이 중앙일보 사설이 설정한 프레임이다. 조 대법원장의 행위를 ‘협조 vs. 거부’의 이분법으로 좁혀놓고, ‘거부했다’는 대답이 나왔으니 논의 종결이라는 구도다. 그 프레임 안에 들어가는 순간 국감의 본질적 질문들은 전부 사라진다.
업추비 해명이 해명이 되려면
업무추진비 논란도 같은 방식으로 처리됐다.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는다”는 발언은 그 자체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중앙일보는 이 발언을 전달하며 사실상 조 대법원장의 해명을 그대로 받아적었다.
그런데 야당 의원들이 문제 삼은 건 조 대법원장의 음주 여부가 아니었다. 업무추진비 지출이 내부 기준을 초과했다는 것, 그리고 그 초과 지출이 어떤 명목으로 처리됐느냐는 것이었다. 조 대법원장 본인도 기준을 초과한 지출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부인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사설은 “술 한 방울” 발언 이후에 그 팩트를 부각하지 않았다. 음주 여부와 업추비 집행 기준은 다른 층위의 문제인데, 전자로 후자를 덮어버리는 효과가 발생했다.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해서 업무추진비가 적절하게 집행됐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는다. 그건 논리적으로 별개다. 그런데 그 발언이 헤드라인 근처에 배치되면, 독자의 뇌는 두 사안을 하나로 묶어 처리한다. 의도했든 아니든, 결과적으로 프레임이 작동한 것이다.
중앙일보가 왜 이 프레임을 선택했는지를 이해하려면 지금 사법부를 둘러싼 정치적 지형을 봐야 한다.
조희대 대법원은 출범 이후 여러 차례 정치적 사안에서 판단이 논란이 됐다. 이재명 대통령의 과거 재판 일정이 특정 정치 국면과 맞물리면서 사법부의 독립성 문제가 반복적으로 제기됐다. 사법부에 대한 국감 질의가 강도 높게 이뤄지는 것도 그 맥락이다. 조 대법원장을 겨냥한 야당 의원들의 질문이 거칠었던 것도 사실이다.
보수 언론의 입장에서 이 국감은 “사법부를 정치적으로 공격하는 장면”으로 읽힌다. 따라서 조 대법원장의 해명을 최대한 부각하고, 질문들의 맥락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사설이 구성된다. 이것은 중앙일보가 일관되게 유지해온 보도 관성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법부 견제가 정치적 공격인가, 아니면 민주주의의 정상적 작동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어느 쪽이냐에 따라, 국감 장면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사법부는 선거로 구성되지 않는다. 국민이 직접 판사를 뽑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의회의 국정감사는 사법행정에 대한 거의 유일한 공개 검증 창구다. 계엄 당시 사법부의 대응이 어땠는지, 최고 사법기관의 예산이 어떻게 집행됐는지를 묻는 것은 정치 공세가 아니라 제도가 요구하는 절차다.
조 대법원장이 국감에서 해명할 기회를 가졌다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다. 그러나 해명을 곧 해소로 처리하는 것은 언론이 할 일이 아니다. 해명이 충분한지, 남은 질문이 무엇인지를 독자에게 제시하는 것이 사설의 역할이어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은 그 역할을 이번에도 수행하지 않았다.
계엄사가 대법원에 접촉했다는 사실은 계속 남는다. 그 접촉이 어떤 경로를 통해 가능했는지, 그 구조가 지금도 유효한지는 “막았다”는 한 마디로 닫힐 수 없는 질문이다. 언론이 그 질문을 닫아버릴 때, 그 다음 국감에서도 같은 해명이 반복될 가능성은 높아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