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가 ‘독선’이라 부르는 것의 정체
중앙일보는 6월 사설에서 이재명 정부를 두고 “유연한 실용정부”와 거리가 멀다고 썼다. 핵심 근거로 제시한 것은 두 가지였다. 국무회의 생중계에 일부 장관들이 불편함을 느낀다는 것, 그리고 임광현 대통령비서실장 인사가 보은 인사라는 것. 사설은 이 두 가지를 묶어 “대통령에게 ‘NO’ 못 하는 구조”라는 결론을 끌어냈다.
논리 자체는 깔끔해 보인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국무회의 생중계가 시작된 건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다. 국가 의사결정 과정을 국민이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한다는 취지였다. 역대 정권 어디서도 시도하지 않았던 조치다. 투명성이라는 가치를 그나마 제도적 형태로 구현한 사례라는 평가가 가능하다.
중앙일보 사설이 포착한 것은 이 제도의 ‘부작용’이었다. 일부 장관들이 카메라 앞에서 자유롭게 발언하지 못한다는 것. 그게 대통령의 독선적 분위기 때문이라는 것.
그런데 잠깐. 이 논리를 끝까지 따라가면 어떤 결론이 나오나.
국민 앞에서 당당히 말하지 못하는 장관이 있다면, 그 장관이 문제인가, 그 자리를 공개한 대통령이 문제인가. 중앙일보 사설은 이 질문을 건너뛴다. 카메라가 없었다면 장관들이 더 자유롭게 발언했을 것이라는 가정을 증명 없이 전제로 깔고, 그 전제 위에서 “독선”이라는 결론을 세운다. 논증 구조가 아니라 역순 추론이다. 결론을 먼저 정해두고 팩트를 꿰맞추는 방식.
“불편하다”는 장관들의 반응이 실제로 확인된 것인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사설이 인용한 것은 익명 또는 간접적으로 전해진 반응이다. 국무회의 생중계가 토론을 위축시킨다는 구조적 증거, 예컨대 발언 빈도 변화나 의사결정 결과의 왜곡 같은 데이터는 없다. 불편하다는 느낌 하나를 독선의 증거로 연결하는 비약이다.
임광현 비서실장 인사 논란은 조금 다른 결을 가진다.
임광현 전 의원은 국세청 출신 세무 전문가이자 이재명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 국면에서 당내 핵심 지지 그룹에 속했다. 중앙일보 사설은 이 점을 들어 “보은 인사”라고 규정했다. 정치적 신뢰도가 있는 인물을 측근 자리에 앉혔다는 지적이다.
이 비판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인사는 정권의 성격을 드러내는 지표다. 그리고 역대 정권 가운데 측근 인사 논란에서 자유로웠던 경우는 없다. 그 점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사설이 “보은 인사”라는 프레이밍을 꺼내들면서 실제로 따지지 않은 것이 있다. 임광현이 비서실장 직무를 수행할 역량을 갖추었는가 하는 질문이다. 세무 행정 전문성이 대통령 비서실 운영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과거 의정 활동에서 어떤 역량이 확인되었는지, 사설 어디에도 이 대목은 없다. 논거 없이 레이블만 붙이는 것은 분석이 아니라 인상 관리다.
물론 반론은 있다. 역량이 있더라도 정치적 친소 관계에 따른 인사 자체가 구조적 문제를 낳는다는 주장이다. 다양한 배경의 인물이 권력 핵심에 접근할 수 없게 만드는 폐쇄성이라는 비판이다. 이 지점은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그 비판을 하려면 역량은 충분하되 인사 구조의 다양성이 문제라고 써야 한다. 역량 검증 없이 보은이라고 쓰면, 그건 다른 주장이 된다. 훨씬 얕은 주장이다.
사설이 설계한 프레임
두 사례를 관통하는 중앙일보 사설의 프레임은 하나다. “대통령에게 NO 못 하는 구조.”
이 프레임은 영리하게 설계되어 있다. 투명성을 압박으로, 전문성 인사를 충성 인사로 재해석함으로써, 정부의 모든 행보를 독선의 증거로 전환할 수 있는 해석 장치다. 이 프레임 안에서는 생중계를 없애도 문제고 유지해도 문제고, 측근을 쓰면 보은이고 외부 인사를 쓰면 허수아비 내각이 된다. 반증 불가능한 프레임은 비판이 아니라 저격이다.
“유연한 실용정부”라는 개념도 사설 안에서 정의되지 않는다. 유연함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야당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인가, 언론의 비판에 즉각 반응하는 것인가, 장관들이 카메라 없이 발언할 수 있는 것인가. 사설은 기준을 제시하지 않은 채 기준 미달이라는 판정을 내린다.
실용이라는 단어가 보수 언론의 맥락에서 쓰일 때, 그것이 실제로 요구하는 것은 종종 ‘우리 쪽 의제에 협조하는 정치’다. 진보 정권이 보수 언론의 프레임에 맞추어 유연하게 행동할 때만 “실용정부”로 평가받는 구조라면, 그 기준 자체가 편향된 자로 잰 결과다.
이재명 정부가 완벽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측근 인사 구조는 분명히 점검이 필요하고, 생중계 제도가 의도대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모니터링도 있어야 한다. 비판이라면 그 지점을 파고들어야 한다.
그러나 중앙일보 사설이 한 것은 그 비판이 아니었다. 투명성 강화 조치를 독선의 증거로, 인사를 역량 검토 없이 보은으로 규정하면서, “NO 못 하는 구조”라는 결론을 끌어낸 것이다. 프레임을 먼저 세우고 팩트를 그 안에 집어넣는 방식의 글이다.
독선인지 아닌지를 따지려면, 의사결정 구조가 실제로 폐쇄적으로 작동하는가를 들여다봐야 한다. 장관들이 카메라 앞에서 불편해한다는 것은 그 증거가 아니다. 카메라를 불편해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이고, 그 불편함을 해소하는 방법이 ‘카메라를 없애는 것’이어야 한다는 논리는 국민의 알 권리보다 관료의 편의가 우선이라는 주장과 같다.
유연한 정부란 권력에 눈치를 보지 않는 정부다. 보수 언론의 프레임에 맞추어 스스로를 재단하는 것이 유연함이라면, 그건 정부의 미덕이 아니라 결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