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파괴라 불렀다 — 헌법 명령 거부한 쪽이 누구인지 보라

9월 22일, 조희대 대법원장은 청와대의 대법관 후보 재제청 요구를 공식 거부했다. 그로부터 30분 뒤 청와대는 반박 성명을 냈다.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대통령의 임명권보다 우위에 있다는 인식으로 헌법에 위배된다”는 것이었다. 이 짧은 공방이 지금 ‘사법부 무력화’ 대 ‘헌법 위반’이라는 전선을 만든 출발점이다.

보수 언론은 이 국면을 ‘탄핵병’이라고 불렀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거의 같은 날 사설에서 쓴 표현이다. 민주당이 탄핵을 남발한다는 것, 그것이 헌정 파괴라는 것이 프레임의 골자였다. 그런데 이 프레임은 주어를 교묘하게 바꿔치기한다. 헌법 명령을 거부한 쪽이 누구였는지를 묻지 않고, 그 거부에 반응한 쪽을 병자 취급한다.


헌법 제104조 2항은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한다. 제청권이 대법원장에게 있다는 건 맞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이 추가되어야 한다. 대통령이 제청안을 반려한 것은 이 조항 어디에도 예정되어 있지 않은 절차였다. 대통령이 임명을 거부하고 재제청을 요구할 수 있는 명문 근거 역시 헌법에 없다. 그러니까 조희대 대법원장 입장에서 보면 ‘재제청을 정당화할 헌법적 근거가 없다’는 말은 일응 논리적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재제청 요구를 거부한 결과, 대법관 자리 두 석이 공석으로 남아 있다. 대법원이 완전한 구성을 갖추지 못한 채 운영되고 있다는 뜻이다. 김선택 고려대 로스쿨 명예교수는 이것을 “제청 부작위에 의한 헌법 위반”이라고 명확하게 표현했다. 임지봉 서강대 교수는 국민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됐다는 점을 지적하면서도, 파면 사유로 이어질지는 별개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헌법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그러나 ‘위법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쟁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심각한 상황이다. 사법부 수장의 행위가 헌법 위반 논쟁의 대상이 되는 상황을 두고, 언론이 집중해야 할 것은 ‘탄핵을 꺼내 든 국회’인가, ‘재제청 거부로 논란을 만든 대법원장’인가.


보수 언론의 ‘탄핵병’ 프레임은 헌법 제65조를 사실상 부정한다. 헌법 65조는 고위공직자가 직무집행에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경우 국회가 탄핵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대법원장도 예외가 아니다. 국회가 이 조항을 근거로 탄핵 논의를 시작했다면, 그것은 헌법이 국회에게 부여한 기능을 작동시킨 것이다. 그 기능을 ‘병’이라고 부르는 건 수사적 과장이 아니다. 삼권분립의 핵심 메커니즘을 병리 현상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만약 이 논리가 관철된다면, 국회는 사법부를 어떤 방식으로도 견제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게 헌정 파괴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국민의힘의 반응은 이 지점에서 더욱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2021년, 임성근 부장판사 탄핵 당시 국민의힘은 ‘사법부 길들이기’라며 전면 반대했다. 그런데 바로 그 시기, 주호영 당시 원내대표는 김명수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소추를 추진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같은 당이, 같은 시기에, 판사 탄핵은 독재라 하고 대법원장 탄핵은 정당한 견제라고 했다. 이 두 발언을 동시에 성립시킬 수 있는 원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법 독립을 내세우는 원칙이 아니라, 자신에게 유리한 구성의 사법부를 지키려는 의도가 원칙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민주당의 탄핵 논의에 약점이 없는 건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 관련 사건이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 논의가 그 재판과 시간적으로 겹치는 것은 사실이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탄핵 사유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신중론이 공개적으로 나왔고, 조국혁신당이 독자적인 탄핵소추안을 준비하는 것과 민주당의 속도 조절 사이에 균열이 보인다. 이 균열이 탄핵을 순수한 헌정 수호 행위로 읽히지 않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약점을 인정한다고 해서, 논의의 방향이 뒤집히지는 않는다. ‘탄핵 타이밍이 정치적’이라는 비판과, ‘재제청 거부가 헌법적으로 문제 있다’는 판단은 논리적으로 동시에 성립할 수 있다. 전자가 사실이라고 해서 후자를 덮을 수는 없다. 위법 논란이 있는 공직자에 대해 국회가 헌법상 권한 행사를 고려하는 것, 그것이 정치적 동기와 뒤섞여 있다는 이유만으로 원천 차단되어야 한다면, 탄핵 제도는 사실상 기능을 잃는다. 헌정 도구가 정치와 완전히 분리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의 임기는 내년 6월까지다. 탄핵이 실제로 추진될 경우 헌재 결정까지의 시간, 인용 가능성, 정치적 파장을 민주당이 계산하고 있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 계산이 공개될 필요가 있고, 탄핵 사유가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는다면 논의는 설득력을 잃는다. 이 점에서 민주당에 대한 비판은 유효하다.


그러나 지금 보수 언론이 전개하는 프레임은 이 비판을 하지 않는다. ‘탄핵병’이라고 부름으로써, 탄핵 사유의 실체를 따지는 논의 자체를 막아버린다. 재제청 거부의 위법성 논쟁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헌정 파괴를 일삼는 민주당’이라는 이미지가 채운다. 이것이 프레임의 역할이다.

‘헌정 파괴’라는 말을 꺼내 든 쪽이 실제로 해야 할 일이 있다. 헌법이 예정하지 않은 임명 거부와 재제청 요구가 어떤 근거로 정당화되는지를 먼저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생긴 대법관 공석이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볼 것인지도 답해야 한다. 그 설명이 나오기 전에 ‘헌정 파괴’의 주어를 민주당에게 붙이는 것은, 언어의 주어를 바꿔 현실을 뒤집는 작업이다.

헌법 명령을 거부한 쪽이 누구인지는 9월 22일의 기록이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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