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인지 절차인지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순직 소방관 빈소에서 한 말이 이것이다. “사과를 바라시니까 사과드립니다.”
빈소에서 나온 말이다. 녹화도 아니고, 보도자료도 아니고, 유가족 앞에서 직접 한 말이다. 그 말에서 ‘사과’라는 단어는 두 번 등장하지만, ‘진심’이라는 감각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바라시니까”—이 다섯 글자가 전부를 설명한다. 당신이 원하니까 해준다는 것이다. 자신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발단은 국정감사였다. 추 지사는 소방을 “골치 아픈 재정 빨대”라고 표현했다. 맥락을 들여다보면, 소방 재정의 지방 이전 문제를 언급하는 자리였다. 소방관 처우와 예산 구조의 불균형—이건 실제로 존재하는 문제다. 소방청 자체 자료에서도 지방 소방 재정의 구조적 취약성은 반복해서 지적된 사안이다. 그러나 그 문제를 설명하는 언어로 “재정 빨대”를 선택한 건, 발언자가 그 말이 향하는 사람들을 한 번도 떠올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목숨을 걸고 현장에 뛰어드는 직군을 예산 항목으로만 본 것이다.
중앙일보는 이 흐름을 “오만”으로 프레이밍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반응을 전면에 배치하고, “귀를 의심했다”, “끝까지 오만하다”는 표현으로 사설의 톤을 구성했다.
여기서 잠깐 멈출 필요가 있다.
중앙일보가 설정한 프레임의 핵심은 ‘추미애 개인의 오만’이다. 이 프레임 안에서는 사건의 원인이 구조가 아니라 인물이 된다. 소방 재정 논쟁은 배경으로 사라지고, 빈소에서의 어색한 사과 한 마디가 전부가 된다. 그리고 국민의힘의 정치적 공세는 정당한 분노처럼 포장된다.
그런데 국민의힘이 이 사안에서 도덕적 발언권을 가질 수 있는가. 소방 재정 국가 지원 확대를 실질적으로 추진했던 것은 현 여당 집권 이전이었고, 윤석열 정부 내내 소방청 예산 증액 요구는 기재부의 벽에 반복해서 막혔다. 소방관 처우 문제를 정치적 무기로 꺼내 드는 야당이, 그 문제를 구조적으로 방치해온 정치 지형의 공범이었다는 사실은 중앙일보 사설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프레임이란 무엇을 넣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빼느냐로 완성된다.
그러나.
중앙일보 프레임을 해체한다고 해서 추 지사의 발언이 괜찮아지는 건 아니다. 이 지점을 흐리는 것 역시 또 다른 종류의 정치적 편의주의다.
원발언은 실패했다. 소방 재정의 구조 문제를 지적하고 싶었다면, “재정 빨대”가 아니라 “국가 책임의 공백”이라고 말했어야 한다. 같은 내용을 담으면서도 현장 소방관을 문제의 원인으로 읽히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언어는 충분히 존재했다. 그걸 선택하지 않았다는 건, 그 언어를 선택할 만큼의 감각이 그 순간 작동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빈소에서의 사과는, 솔직히 말하면 원발언보다 더 불편하다. 원발언은 실수로 읽힐 여지가 있다. 그러나 빈소에서 “바라시니까 사과드립니다”는 실수가 아니다. 그건 선택이다. 그 자리에서 그 표현을 골랐다는 것은, 자신이 틀렸다는 인식보다 절차를 마무리하겠다는 계산이 앞섰다는 신호다. 유가족 앞에서.
정치인의 사과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 하나는 진심의 표현이고, 다른 하나는 위기 관리다. 대부분의 정치인은 두 번째를 한다. 그게 현실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빈소라는 공간은 그 두 기능이 충돌하는 곳이다. 유가족은 절차가 아니라 사람을 보러 온 상대다. 그 앞에서 위기 관리 언어를 구사했을 때, 보는 사람이 불편함을 느끼는 건 감정 과잉이 아니라 정상적인 감각이다.
추미애 지사가 소방 재정 문제의 심각성을 진짜로 이해하고 있다면—그리고 정치인으로서 그것을 공론화하려 했다면—이번 사건은 그 의도를 스스로 지운 사건이다. 메시지는 발언자가 아니라 듣는 사람이 결정한다. “골치 아픈 재정 빨대”를 들은 소방관들이 자신들을 지원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하기를 기대하는 건, 발신자의 오만이다.
중앙일보는 이것을 오만이라고 불렀다. 그 결론이 틀린 건 아니다. 다만 중앙일보가 오만이라고 부를 때, 그들이 실제로 분노하는 건 소방관의 처우가 아니라 이재명 정부의 핵심 지지자가 실수를 했다는 정치적 사실이다. 그 분노는 공정하지 않다. 그러나 그 분노의 대상인 발언 자체는, 분노받을 이유가 있다.
두 가지가 동시에 참일 수 있다. 야당과 보수 언론의 공세가 정치적 편의에서 나왔다는 것, 그리고 추 지사가 이번에 명백히 실패했다는 것. 이 두 문장을 동시에 쓰는 것이 불편하다면, 그 불편함이 이미 진영 논리의 시작이다.
소방 재정은 계속 논의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방식으로는, 그 논의가 앞으로 나아가기 더 어려워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