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이 “조국 딸 표창장 위조와 한동훈 딸 표창장이 뭐가 다르냐”는 취지의 발언을 연속으로 꺼냈다. 맥락은 단순했다. 당시 한동훈 전 대표의 정치적 재기 가능성이 거론되던 시점이었고, 과거 민주당이 조국 사태를 두고 “표창장 위조는 명백한 범죄”라고 공세를 퍼부었으니, 이제 같은 잣대를 들이대면 된다는 계산이었다. 대칭의 논리, 혹은 대칭의 환상.
이 주장은 직관적으로 그럴듯하게 들린다. “너희도 똑같이 자식 스펙에 부모 권력을 썼잖아”라는 말은, 피로한 유권자에게 양쪽이 다 썩었다는 체념을 심어주는 데 탁월하게 작동한다. 문제는, 그 대칭이 실제로 성립하느냐다.
위조와 의혹은 같지 않다
조민 씨 표창장 사건에서 핵심은 ‘위조’였다. 정경심 교수가 한국동양학회 명의의 표창장을 포토샵으로 변조했다는 물증이 수사 과정에서 확보됐다. 문서 자체가 조작됐다는 디지털 포렌식 증거, 학회 관계자의 진술, 발급 기록 부재. 이 세 가지가 교차됐고, 법원은 이를 토대로 유죄를 확정했다. 대법원 판결이 2023년에 나왔다. 사법 절차가 끝났다.
한동훈 전 대표의 딸 사건은 구조가 다르다. 딸이 고등학생 시절 받은 서울시 시민상의 공적 조서에, 기업 노트북 기부를 “주선했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이것이 실제로 고등학생이 독자적으로 한 일인지, 아니면 부모의 지위가 사실상의 배경이 된 것인지를 두고 의혹이 제기됐다. 경찰은 수사심의위원회까지 거쳐 무혐의로 종결했다.
두 사건을 같은 선상에 놓으려면 최소한 이 차이를 통과해야 한다. 하나는 문서 위조라는 명확한 행위로 유죄 확정까지 간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공적의 실질성에 대한 의혹이 수사로 이어졌으나 무혐의로 마무리된 사건이다. 이걸 “같다”고 말하는 순간, 논리가 아니라 분노를 팔고 있는 것이다.
물론 무혐의가 곧 결백의 증명은 아니다. 수사의 한계가 있을 수 있고, 입증 불가와 사실 부재는 다른 이야기다. 이 지점에서 한동훈 사건을 조국 사건과 동일시하려는 쪽의 주장이 그나마 숨을 쉰다. “경찰이 봐준 거 아니냐”는 의심은 정치적으로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의심을 밀고 나가려면, 수사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봐주기였는지를 제시해야 한다. 심의위까지 거친 수사 절차를 통째로 의심하면서 별다른 근거를 내놓지 않는다면, 그건 분석이 아니라 믿고 싶은 결론을 위한 역추론이다.
진짜 질문은 제도에 있다
이 논쟁에서 실제로 따져볼 가치가 있는 지점은 따로 있다. 고등학생이 기업 기부를 “주선”하는 것이 어떻게 공적 시민상의 수상 요건이 됐는가, 그 심사 과정에 어떤 검증이 있었는가다. 위조 여부와 별개로, 서울시 시민상의 선발 기준과 심사의 실질성 자체가 검토돼야 하는 것이다.
이 질문은 한동훈 전 대표 개인을 겨냥하는 것과 다르다. 부모의 사회적 위치가 자녀의 스펙 형성에 구조적으로 개입하는 경로를 어떻게 차단할 것이냐는 문제다. 조민 씨 사건이 한국 사회에 던진 충격도 결국 그 지점이었다. 표창장 하나의 도덕적 시비가 아니라, 상위 계층이 자녀의 진로에 자원을 동원하는 방식이 얼마나 불투명하게 작동하는가였다.
그 문제의식은 유효하다. 다만 그 문제의식을 특정 인물을 공격하는 데만 쓰고, 제도 개선으로 연결하지 않는다면 매번 동일한 자리를 맴돌게 된다. 조국 사태 이후 대입 제도 개편 논의가 뜨거웠지만, 시민상이나 각종 지역 수상 실적이 스펙으로 활용되는 경로에 대한 체계적 검토가 실제로 이뤄졌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한동훈 딸도 조국 딸과 같다”는 주장은 사실관계에서 성립하지 않는다. 그리고 동시에, “무혐의 받았으니 아무 문제 없다”는 주장도 충분하지 않다. 두 명제 사이 어딘가에, 실제로 논쟁이 놓여야 할 자리가 있다. 특권의 세습이 어떤 경로로 이뤄지는가, 그 경로를 막는 장치를 우리가 갖추고 있는가.
이 질문 없이 표창장 공방을 반복한다면, 결국 남는 건 상대 진영을 향한 분노뿐이다. 그리고 분노는 제도를 바꾸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