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초 기자회견에서 “국민 삶에 피해를 주면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수사권 조정 논란을 비롯해 각종 개혁 입법이 쏟아지던 시점이었다. 그 발언은 진보 지지층에게는 원칙의 확인처럼 들렸고, 회의론자들에게는 시험 문제처럼 들렸다.
지금 그 시험 답안지를 들여다보면, 채점이 쉽지 않다.
검사 보완 수사권 폐지는 지난봄 국회를 통과했다. 여론조사 결과는 일관됐다. 복수의 조사에서 60% 안팎의 응답자가 보완 수사권 존치를 원한다고 답했다. 검찰 개혁 자체에 반대한 게 아니었다. “수사권을 아예 없애는 방식이 맞느냐”는 질문에 다수가 고개를 저은 것이다. 그 민심을 정부·여당은 “검찰 기득권의 반발”로 설명했다. 하지만 60%는 검사가 아니다. 그 60%의 상당수는 검찰 개혁을 지지하면서도 설계 방식에 의문을 품은 사람들이다.
“국민 피해 안 된다”는 원칙과 “국민 60%의 반대를 무릅쓴 입법”이 어떻게 한 문장 안에 들어올 수 있는지, 정부는 아직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가장 불편한 숫자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79주 연속 상승했다. 이 숫자를 보수 언론은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실패”로 읽는다. 그 프레임 안에는 전 정부 시절 급등장과의 비교도, 금리 변수도, 공급 시차도 없다. 단순하고 강렬한 그림이다.
그러나 그 프레임을 걷어내도 문제는 남는다.
비거주 1주택자에 대한 세금 압박이 강화되면서 서울·경기 일대 37만 전세 가구가 실질적 이사 압력에 놓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집주인이 세금을 감당하지 못해 전세를 빼거나 월세로 전환할 때 피해를 입는 사람은 투기꾼이 아니다. 지금 그 집에 살고 있는 세입자다. 진보 정책이 세입자를 보호하겠다는 이름으로 설계되었는데, 정작 세입자가 먼저 짐을 싸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건 정책의 언어와 정책의 결과 사이에 간극이 생긴 것이다.
이 간극을 지적하는 게 보수의 전유물이 되어선 안 된다. 오히려 진보 안에서 먼저 말해야 한다.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 도입이 당정 협의 없이 금융 당국 주도로 발표됐을 때, 시장은 잠깐 들썩였다. 개인 투자자 보호를 표방하는 정부가 고위험 파생상품의 접근성을 낮추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신호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소액 투자자들은 혼란스러웠다. 2030 개인 투자자들이 이 정책에 냉담했던 건 보수 언론에 세뇌됐기 때문이 아니다. 정책 수혜자가 누구인지 납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무한 교섭 논란도 비슷한 구조다. 입법의 방향 자체를 문제 삼는 게 아니다. “무한 교섭”이 현실화될 경우 중소 하청업체가 먼저 압박을 받는다는 우려는, 이 법이 보호하려는 노동자와 같은 계층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그 우려를 “기업 편을 든다”고 봉인하면, 입법의 사각지대는 커진다.
보수 언론은 이 모든 사례를 하나의 리스트로 묶어 “이재명 실정”이라고 명명하는 데 능숙하다. 그 프레임은 단순하고 효과적이다. 정책의 맥락을 지운 자리에 “무능” 두 글자를 채워 넣는다.
그 프레임 자체는 거부해야 한다. 정책 실패를 인물 실패로 환원하는 건 분석이 아니라 정치다.
하지만 프레임을 거부한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문제는 프레임 바깥에도 동일하게 존재한다. 검찰 개혁의 방향이 옳아도 설계가 어긋나면 피해는 실재한다. 전세 시장의 구조적 모순을 건드리는 게 필요해도, 세입자가 먼저 피해를 입는 순서라면 재설계가 필요하다. 좋은 의도는 나쁜 결과를 면죄하지 않는다.
진보 정책이 장기적으로 신뢰를 얻으려면 두 가지를 동시에 해야 한다. 보수 언론의 프레임을 해체하는 일과, 자기 정책의 결과를 직시하는 일.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른 방향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같은 방향이다. 프레임 해체는 팩트를 강화할 때 힘이 생기고, 팩트는 정책의 실제 결과를 정직하게 추적할 때 쌓인다.
“국민 삶에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말이 원칙이 되려면, 정책이 누구에게 어떤 순서로 피해를 주는지를 정부 스스로 가장 먼저 묻는 습관이 필요하다. 지금 이재명 정부의 가장 위태로운 지점은 그 질문이 충분히 날카롭지 않다는 데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