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국 대사 부임을 앞두고 시민단체가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조선일보는 이 장면을 포착해 사설을 썼다. 제목의 요지는 “이례적 주목을 받는 대사 부임이 한미 관계 이상 신호”라는 것이다.
기자회견은 사실이다. 대사 부임이 화제가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조선일보의 사설이 걸어온 논리의 방향은, 팩트와 정반대다.
조선일보 사설의 논리 구조를 먼저 해부해보자. 뼈대는 이렇다. 대사 부임에 반대 기자회견이 열릴 만큼 이슈가 됐다 → 그만큼 한미 관계가 복잡해졌다 → 이재명 정부 들어서 이렇게 됐다. 세 단계가 마치 자연스러운 인과처럼 배열돼 있지만, 두 번째에서 세 번째로 넘어가는 순간 논리가 아니라 암시가 작동한다. 명시적 근거 없이 ‘이재명 정부 책임’이라는 결론이 미끄러져 들어온다.
이 방식은 낯설지 않다. 불편한 사실을 선택적으로 배열하고, 마지막 결론은 독자가 ‘자연스럽게’ 끌어오도록 설계하는 것. 사설의 고전적인 프레이밍 기술이다. 다만 그것이 기술로 보이느냐, 논거로 보이느냐는 독자가 끊임없이 따져야 할 몫이다.
그렇다면 최근 한미 사이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나.
쿠팡 물류 계약 압박, 정보통신망법 개정 과정에서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반발과 외교 채널 동원, 대북 정보 공유 조율 문제. 이 갈등들의 공통점이 있다. 상당수가 미국 측의 일방적 요구이거나 한국 내정에 대한 외부 압력의 성격을 띤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를 “양국이 충돌하고 있다”는 식의 중립적 언어로 묘사하지만, 중립적 언어가 항상 공정한 묘사는 아니다. 압력을 가하는 쪽과 받는 쪽을 같은 선상에 놓는 순간, 이미 한쪽에 유리한 프레임이 완성된다. 누가 먼저 어떤 요구를 했는지를 지운 채 “관계가 나빠졌다”고 말하면, 갈등의 원인은 자동으로 ‘덜 양보한 쪽’에게 귀속된다.
한국이 “덜 양보한 쪽”으로 지목된다는 것은, 이 프레임 안에서 이재명 정부가 한미 관계 악화의 원인이 된다는 것과 같다.
조선일보 사설이 해리스 전 대사의 “조선 총독” 발언을 꺼낸 것도 짚을 필요가 있다. 사설은 이 발언에 대한 당시 비판을 끌어와, 지금의 반대 기자회견과 나란히 놓는다. 의도는 명확하다. 한국 사회에는 미국 대사를 공격하는 오래된 경향이 있고, 지금 사태도 그 연장선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심는 것이다.
그런데 해리스 대사가 당시 비판을 받은 건 이유가 있었다. 그는 한국 정부의 의사결정에 공개적으로 개입하는 발언을 반복했고, 외교적 관례를 자주 넘었다. 그에 대한 비판은 반미 정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발언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 맥락을 지우고 “또 대사를 공격한다”는 구도로 재배치하면, 과거의 정당한 비판마저 감정적 반응으로 소급된다.
이건 물타기다.
이쯤에서 가장 강한 반론을 직접 꺼내보자. “아무리 그래도 대사 부임에 반대 기자회견이 열리는 건 외교적으로 이례적이고, 그 자체가 한미 관계 긴장의 신호 아닌가?”
타당한 질문이다. 기자회견이 열린 것 자체는 사실이고, 그것이 어떤 긴장을 반영한다는 것도 완전히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조선일보 사설의 문제는 그 긴장의 원인을 이재명 정부의 태도로 귀결시킨다는 점에 있다. 기자회견을 연 시민단체가 문제 삼은 것은 대사 개인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부임 예정자의 과거 발언과 이력에 담긴 대한국 인식이었다. 그 내용은 한번쯤 정면으로 다뤄져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은 그 내용을 비껴간다.
긴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긴장이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묻는 것과, 긴장이 존재하니 한국이 자세를 낮춰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조선일보는 전자를 말하는 척하면서 후자를 말한다.
외교에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상대의 요구를 수용하며 마찰을 줄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국의 이익을 명확히 하면서 협상하는 것이다. 전자가 더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건 평화가 아니라 종속이다. 후자가 갈등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이 외교의 실체다.
조선일보가 우려하는 “한미 관계 악화”의 실상이 후자에 가깝다면, 그건 위기가 아니라 정상화다. 한국이 동맹의 이름 아래 일방적 압박을 수용해온 관성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당연히 삐걱거린다.
조선일보 사설은 그 삐걱거림을 현 정부의 외교 실패로 읽기를 원한다. 그러나 삐걱거리지 않는 관계가 반드시 건강한 관계는 아니다. 소리 없이 굽히는 쪽이 항상 그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