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사설 분석] 취재방해 사과 안한 최민희

경향신문은 이 사건을 “취재방해 사과를 거부한 최민희”로 프레임 잡았다. 제목부터 명확하다. 사과하지 않은 행위 자체가 문제의 본질인 것처럼 배치한 구도다. 그런데 이 프레임에는 슬며시 빠져 있는 게 있다. 최민희가 왜 이 사안에서 특히 더 아프게 걸리는지, 그 이유다.

사과 여부는 결과다. 원인은 따로 있다.

2025년 민주당 전당대회 현장에서 최민희 최고위원 후보는 오마이TV 취재진의 촬영을 손으로 막았다. 해당 기자의 과거 이력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이런 사람이 취재하러 왔다”는 식의 발언도 했다. 오마이TV는 친야 성향의 매체로 분류되는 곳이다. 싫어하는 쪽의 언론도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식의 취재라면 물리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인 것이다. 이후 사과 요청이 이어졌지만 최민희는 “최소한의 자기방어”였다고 맞받았다.

이쯤에서 2022년으로 잠깐 돌아가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MBC 기자를 대통령 전용기 탑승에서 배제했을 때, 최민희는 YTN 라디오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취재 거부의 자유는 일반인에게만 있고 대통령에게는 없다. 공인이기 때문에.” 이 발언은 단순한 비판이 아니라 원칙의 선언이었다. 공인은 취재를 선택할 수 없다, 그것이 공인의 조건이라는 주장이었다. 그 선언을 한 사람이, 지금 공인의 자리에서 취재를 막고 그것을 자기방어라고 부르고 있다.


경향신문 사설의 초점은 “사과하지 않은 태도”에 맞춰져 있다. 프레임은 최민희의 태도 문제, 즉 개인의 품격과 반성 능력에 관한 이야기로 이 사건을 처리한다. 이 구도에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사과했더라면 끝날 일”이라는 결론으로 유도된다.

그게 진짜 문제를 흐린다.

최민희가 사과를 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이 사건은 사라지는가. 아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을 역임한 사람이, 언론의 취재 환경을 감시하는 위치에 있었던 사람이, 자신의 공개적인 원칙 발언과 정반대의 행동을 취했다는 사실 자체는 남는다. 사과는 그 행동이 잘못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이지, 왜 그 행동이 나왔는지를 해명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설명이 필요한 것은 행동의 동기다.

“최소한의 자기방어”라는 표현이 중요하다. 취재를 위협으로 인식했다는 뜻이다. 그 인식 자체가 언론 권력 감시 역할을 맡았던 정치인에게서 나왔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 대목에서 반론 하나를 끌어와야 한다. “2022년 발언은 대통령이라는 특수한 공인에 대한 이야기였고, 최민희는 현재 후보에 불과하다. 맥락이 다르다”는 반론이다. 논리적으로 들린다.

그런데 최민희가 2022년에 쓴 근거는 “공인이기 때문에”였다. 대통령이라서가 아니라, 공인이라는 지위 자체가 취재를 수용해야 할 조건이라는 논리였다. 전당대회 최고위원 후보는 명백한 공인이다. 그 기준을 처음 세운 사람이 최민희 자신이라는 점에서, 이 반론은 최민희의 말에 의해 오히려 반박된다.

논리는 상황에 따라 작동 방식이 달라지면 안 된다. 적어도 그 논리를 원칙으로 내세웠던 사람에게는.


진보 진영이 언론 자유를 무기로 쓸 때는 보편적 원칙으로 선언하고, 정작 자신이 취재 대상이 될 때는 맥락과 상황을 따진다. 이 비대칭이 반복될 때마다 언론 자유 논의 전체의 신뢰가 소모된다. 보수 정치인이 같은 행동을 했을 때 진보 언론이 어떤 표현을 썼는지를 기억한다면, 최민희 사건에 적용할 기준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경향신문은 이 사건을 “사과”의 문제로 축소했다. 하지만 이 사건이 불편한 이유는 사과 여부가 아니라, 원칙을 발언한 사람이 그 원칙에서 가장 먼저 이탈했기 때문이다. 기준이 권력의 편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 그리고 그 이탈을 “방어”라는 언어로 포장했다는 것. 사과 한 마디로 덮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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