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사설을 냈다. 제목은 “내전 같았던 全大 종료, 국민 삶 챙기는 집권당 돼야.” 읽다 보면 묘하게 어색하다. 야당에 대고 “집권당답게 굴어라”고 촉구하는 보수 일간지의 사설. 이 어색함이 사실 이 글 전체의 핵심이다.
민주당 전당대회는 끝났다. 김민석 신임 대표가 선출됐고, 당은 재편됐다. 전당대회가 치열했던 건 사실이다. 이재명 전 대표를 둘러싼 노선 갈등, 검찰 수사권 폐지를 비롯한 사법 개혁 의제들이 충돌했다. 어느 정당의 전당대회도 내부 갈등 없이 끝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이것을 “내전”이라 불렀다.
“내전”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이 단어를 선택하는 순간, 전당대회는 민주주의 정당의 정상적 경쟁이 아니라 자멸적 분열로 코딩된다. 조선일보는 이 표현 하나로 독자에게 특정 인식을 심는다. ‘민주당은 스스로 무너지고 있다’는 인식. 사설이 본격적인 논거를 펴기도 전에, 제목과 도입부가 이미 결론을 내려버린 구조다. 프레임이 먼저고, 팩트는 나중이다.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국민 삶을 챙겨라”는 훈수다. 물가, 민생, 경제. 야당이 대결과 선명성 경쟁에 몰두하는 동안 정작 국민 삶은 뒷전이라는 논리다. 언뜻 보면 온당하다. 민생을 챙기라는 말에 반대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이 말이 조선일보 사설에서 나올 때, 그 문장 바로 옆에 무엇이 붙어 있는지를 봐야 한다.
사설은 검찰 보완수사권 완전 폐지 요구를 “선명성 경쟁”의 사례로 거론했다. 공소 취소 주장도 마찬가지다. 이 두 가지가 “국민 삶과 동떨어진 과격한 주장”의 예시로 나란히 배치된다. 그러니까 이 사설에서 “민생”은 독립적인 가치가 아니다. 검찰 개혁 의제를 밀어내기 위한 논리적 대체재다. 민생을 앞세움으로써, 검찰 문제는 민생과 무관한 정치 공세로 밀려난다.
이 구도를 한번 뒤집어보자.
검찰 수사권 남용 문제는 2017년 이후 꾸준히 제기돼온 구조적 이슈다. 검찰이 기소권과 수사권을 동시에 갖는 나라는 OECD 회원국 가운데 극히 드물다. 수사권 조정, 공수처 설치, 보완수사권 이관은 모두 이 구조를 바꾸자는 흐름의 연장선이다. 이것이 과연 “민생과 동떨어진 선명성 경쟁”인가. 검찰 권력에 의해 삶이 무너진 사람들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전제 아래서만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조선일보가 지난 10년간 검찰 권력 강화를 어떻게 보도했는지는 굳이 아카이브를 뒤질 필요도 없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정치적으로 부상하던 시기, 조선일보는 그를 정권에 맞서는 영웅 서사로 소비했다. 검찰 수사권이 야당 정치인을 향할 때는 “법 앞의 평등”을 외쳤고, 그 권한 자체를 견제하자는 논의에는 “수사 무력화”라는 딱지를 붙였다. 그 언론이 지금 민주당에게 “민생을 챙겨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건 심판이 경기장에 내려와 선수에게 전술을 지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것도 특정 팀의 유니폼을 10년째 입고 있는 심판이.
물론 반론이 가능하다. 보수 언론도 야당을 비판할 권리가 있다. 비판의 내용이 옳다면, 누가 했느냐는 부차적이다. 조선일보 사설이 “민생을 챙겨라”고 했다고 해서 그 말 자체가 틀린 건 아니지 않은가.
이 반론은 맞다. 그리고 이 글은 “민생을 챙겨야 한다”는 명제를 부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명제가 아니라 용법이다.
“민생을 챙겨라”는 말은 어떤 문맥에서도 쓸 수 있는 만능 훈수다. 여당한테도, 야당한테도, 보수한테도, 진보한테도. 그런데 이 말이 검찰 개혁 의제 비판과 묶이는 순간, 그것은 민생 논의가 아니라 특정 의제를 무력화하는 언어적 도구가 된다. 조선일보 사설이 한 것은 그것이다. 민생이라는 보편 언어를 빌려, 특정 정치 의제를 주변화한 것.
그리고 지방선거 결과를 “민심이 공소 취소를 거부했다”는 식으로 읽는 것은 해석이 아니다. 지방선거는 수십 개의 변수가 동시에 작동하는 선거다. 후보 개인 요인, 지역 구도, 투표율, 이슈 현저성 모두 영향을 미친다. 단일 이슈에 대한 신임 투표가 아니다. 그 복잡한 결과를 “민심이 특정 주장을 거부했다”고 단정하는 건, 데이터 해석이 아니라 바라는 결론을 사실처럼 포장하는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의 구조는 결국 이렇다. ‘민주당 전당대회는 내전이었다 → 과격한 선명성 경쟁을 했다 → 그 과격함의 핵심은 검찰을 건드리는 것이다 → 그러지 말고 민생이나 챙겨라.’ 첫 번째 문장의 감정적 코딩(“내전”)이 마지막 문장의 도덕적 훈수(“민생”)로 이어지는 동안, 검찰 개혁이라는 의제는 슬그머니 정치 과잉의 산물로 처리된다.
이 구조를 독자가 눈치채지 못하길 바라는 것. 그것이 이 사설의 실제 기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