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대한민국의 권력 지형을 놓고 싸우는 세 사람이 있다. 이재명, 조국, 한동훈. 이 셋이 정치적으로 무슨 관계인지는 각자 판단이 다를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묘한 공통점이 있다. 조국은 서울대 법대 출신이다. 한동훈도 서울대 법대다. 전임 대통령 윤석열 역시 서울대 법대다. 이 나라 권력의 정점에서 충돌하는 인물들이, 이재명을 제외하면, 같은 학교 같은 과에서 나왔다.
이걸 단순한 우연으로 볼 수 있을까.
이재명의 이력은 한국 정치사에서 꽤 이례적인 지점에 놓인다. 그는 경기도 안동 출신으로, 중학교를 마친 뒤 소년공으로 일했다. 검정고시를 거쳐 중앙대 법대를 나왔고, 사법시험을 통과해 변호사가 됐다. 성남시장, 경기도지사를 거쳐 대통령이 됐다. 이 경로에서 이른바 ‘스카이 네트워크’나 재력 있는 집안 배경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 사실이 그를 무조건 지지해야 하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정치인을 출신으로 평가하는 건 그 자체로 위험한 발상이다. 흙수저 출신이라고 해서 정책이 옳아지지는 않고, 금수저 출신이라고 해서 서민을 위한 정치를 못 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도 이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 이유는,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자산과 학벌은 빠른 속도로 대물림되고 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상위 소득 가구의 자녀가 명문대에 진학할 확률은 하위 소득 가구의 자녀와 비교해 격차가 매년 벌어지고 있다. 사교육비 지출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 중이고, SKY 대학의 수시 전형은 이미 특정 고교 출신에게 구조적으로 유리하게 설계돼 있다는 비판이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그 결과가 지금의 정치 지형에도 반영되고 있다면, 이건 단순한 입시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 반론 하나를 정면으로 받아야 한다.
“이재명이 흙수저 출신이라는 사실이 그의 정치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쓰이는 것 아닌가? 실제로 그는 각종 의혹과 재판을 받는 인물이다.”
틀린 지적이 아니다. 출신 배경은 정치인의 도덕성이나 정책 능력을 보증하지 않는다. 검정고시를 통과해 대통령이 됐다는 서사가, 그의 법적·정치적 판단에 대한 비판을 면죄해주지는 않는다. 그 점에서 이 글이 이재명 개인을 옹호하는 글이 된다면, 그건 이 글의 실패다.
이 글이 말하려는 건 다른 것이다.
이재명의 성공 경로 자체가 앞으로는 재현되기 어려운 구조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구조적 변화를 우리가 얼마나 진지하게 인식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소년공 출신이 사법시험을 통과하고 대통령이 되는 경로는, 제도적으로는 지금도 열려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사법시험은 이미 폐지됐다. 로스쿨 진학에는 상당한 비용이 든다. 대학원 진학이 사실상 필요해진 직군이 늘어났고, 각종 자격증과 스펙 경쟁은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게 유리하게 기울어져 있다. 정치 자금과 조직력이 필요한 선거 구조도 마찬가지다. 지역 기반, 학연, 자본이 없는 인물이 광역단체장을 거쳐 대통령 후보까지 가는 경로는 구조적으로 더 험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서울대 법대 출신이 권력의 중심에 몰려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는 아닐 수 있다. 그들이 유능하다면 그 자리에 있을 이유는 충분하다. 문제는 그 집단 외의 경로가 구조적으로 막혀가고 있을 때, 민주주의가 실질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누구든 능력이 있으면 올라갈 수 있다는 원칙은, 그 능력을 개발할 초기 조건이 균등하게 주어질 때만 의미가 있다.
한국 보수 언론이 이재명의 출신 배경을 다루는 방식은 대체로 두 가지다. 그의 흙수저 서사를 아예 무시하거나, 반대로 ‘피해의식의 정치’로 프레이밍해서 공격 소재로 삼는다. 전자는 불편한 진실을 회피하는 것이고, 후자는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문제 제기를 개인의 열등감으로 축소하는 전형적인 프레임 이동이다. 두 방식 모두 이 사안의 핵심을 건드리지 않는다.
핵심은 이재명이라는 개인이 아니다. 그의 성공 경로가 앞으로 얼마나 반복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지금 이 나라의 권력 구조를 보면, 정치적 이념을 떠나 특정 학벌과 계층이 상층에 집중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진보 진영도 예외가 아니다. 조국 현상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그는 서울대 법대 교수 출신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계층적 배경 사이의 괴리를 끝내 해소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흙수저가 정치의 정점까지 올라오는 일이 이례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사회는, 어떤 의미에서 이미 계층 고착화를 상수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사회다. 그것이 뉴스가 되고, 서사가 되고, 지지의 이유가 된다는 것 자체가, 그 반대의 경우가 얼마나 일상화돼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이재명을 지지하든 반대하든, 이 구조의 문제는 그와 무관하게 남는다. 그리고 그 문제를 외면하는 정치는, 이념의 색깔을 불문하고, 결국 동일한 계층의 이익을 재생산하는 데 수렴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