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이 국회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출석한 건 2024년 10월이었다. 한국 대중문화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주제로 한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감이었고, 박진영은 한국 대중문화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앉아 있었다. 의원이 물었다.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개인적으로 이득 취한 게 있습니까?” 박진영이 잠깐 뜸을 들이더니 답했다. “사비는 좀 많이 썼습니다.” 국감장에 웃음이 터졌다.
이 장면이 SNS에서 빠르게 퍼진 건 단순히 웃겨서가 아니다. 사람들이 웃은 이유를 좀 더 정확히 짚으면, 예상된 공격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감에 불려 나온 증인이 “이득을 취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보통은 방어 자세가 나온다. 해명, 반박, 혹은 어색한 침묵. 그런데 박진영의 답은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그러나 담담하게, 오히려 손해를 봤다고 말한 것이다.
이 국감에서 실제로 문제가 제기된 사안은 따로 있었다. K-팝 관련 글로벌 행사 운영 과정에서 상표권 선취득 논란이 불거졌고, 해당 상표가 위원회와 관련된 민간 사업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의원들이 완전히 틀린 문제를 들고 온 건 아니었다. 공공성을 띤 위원회 활동과 민간 기업의 이해관계가 교차할 때 발생하는 이 구조적 모호함은, 진지하게 따져야 할 사안이다.
박진영은 “회사에 남는 일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본인의 진술만으로 모든 의혹이 해소되는 건 아니다. 그 주장이 사실인지 검증하는 것이 국감의 역할이고, 그 과정이 불편하게 느껴지더라도 생략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날 국감이 화제가 된 방향은 그 검증의 날카로움 때문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K-팝 해외 관람객을 52만 명에서 60만 명으로 늘릴 수 있을지를 같이 고민하는 질의가 나왔고, 무보수로 활동한 공인에게 “그래도 보람은 있었느냐”고 묻는 장면이 있었다. 이 국감은, 공격과 방어의 구도보다 산업 정책을 함께 설계하는 쪽에 더 많은 시간을 썼다.
이 지점에서 어떤 사람들은 반발할 것이다. 국감이 친목 도모 자리냐, 감시 기능을 포기한 거 아니냐고.
그 반론에는 일부 근거가 있다. 국감이 지나치게 온화해지면, 권력에 유착된 민간 영역을 실질적으로 견제하지 못하는 거수기가 된다. 특히 K-팝이라는 산업이 지금처럼 국가 브랜드와 긴밀히 묶이는 구조에서, 민간 기업인이 공공 위원회를 통해 어떤 이익을 가져가는지를 냉정하게 따지는 건 포기해서는 안 되는 기능이다.
그러나 국감에서 모든 증인을 잠재적 피의자로 취급해야 감시 기능이 산다는 논리는 틀렸다. 국감의 실질적 가치는 증인을 몰아붙이는 데 있지 않다. 어떤 정책이 작동하고 있는지, 어디서 구멍이 나는지, 무엇이 더 필요한지를 입법부가 행정부와 민간으로부터 직접 들어내는 데 있다. 협력적 질의가 가능한 자리에서 굳이 공격적 프레임을 고집하는 건 국감의 형식을 지키는 척하면서 실질을 버리는 일이다.
이날 질의에서 일부 의원들이 보여준 태도는, 적어도 그 형식 강박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사비는 좀 많이 썼습니다.”
이 한 문장이 웃음을 유발한 건, 그것이 국감이라는 공간의 문법과 완전히 어긋났기 때문이다. 국감장의 기본 문법은 공방이다. 질문은 날카롭고, 답변은 방어적이다. 그 리듬이 깨질 때 사람들은 웃는다. 그리고 그 웃음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이 자리가 왜 항상 이렇게 피곤해야 하는가에 대한 반응이다.
K-팝은 지금 한국이 가진 몇 안 되는 실질적인 소프트파워 자원이다. 그 산업을 국감에서 다룰 때, 의원들이 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다. 구조적 문제를 파고들거나, 더 잘 작동하도록 입법적 지원을 모색하거나. 이 두 가지는 상호 배타적이지 않다. 그런데 한국 국감의 오랜 관행은 이 두 가지를 분리하지 못하고, 어떤 증인이 왔느냐에 따라 전자만 하거나 후자만 한다. 정치적으로 유용한 타깃이면 공격하고, 그렇지 않으면 치켜세운다.
이날이 협력적이었다면, 그것이 박진영이라는 인물의 인기 덕분인지, 아니면 K-팝이라는 소재의 정치적 민감도가 낮아서인지는 물어봐야 할 질문이다. 그것까지 검증하지 않으면, 이 장면을 마냥 훈훈하게 소비하는 것도 일종의 프레임이다.
다만, 그 의심을 품은 채로도 이렇게는 말할 수 있다. 사비를 쓰면서 공적 역할을 맡은 사람에게, 그 사실을 확인하고 수고를 인정하는 질의가 나왔다는 것. 그리고 그 장면이 뉴스가 됐다는 것. 국감이 늘 이런 식으로 기억되지 않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