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민주당에 “왜 탄핵을 망설이냐”고 물었다. 2025년 국정감사장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이 200여 일째 채워지지 않은 대법관 공백 문제를 추궁받던 날이었다. 야당이 여당에게 탄핵을 “왜 안 하느냐”고 윽박지르는 장면. 이게 도발인지, 아니면 자기도 모르게 내지른 자폭인지를 따져보려면 맥락부터 복원해야 한다.
빠진 맥락이 프레임을 만든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이번 국감에서 이석 관례를 깨고 착석한 채 의원 질의를 받았다. 그 자체로 전례를 벗어난 장면이었고, 민주당이 이를 문제 삼은 것은 사실이다. 중앙일보 사설은 이 지점을 잡아 민주당의 사법부 압박 논리를 펼쳤다. “행정부가 사법부 수장을 국감장에 불러 길들이려 한다”는 프레임이다.
그런데 사설이 통째로 건너뛴 게 있다. 왜 대법관 재제청이 문제가 됐느냐는 질문이다. 대법관 자리가 200일 넘게 비어 있는 것은 대법원장이 재제청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법관 임명 절차는 대법원장이 후보를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다. 제청이 없으면 임명도 없다. 이 공백의 1차 원인 제공자가 누구인지, 사설은 단 한 줄도 쓰지 않았다. 맥락이 빠진 자리에 프레임이 들어앉는다.
국민의힘도 마찬가지였다. “삼권분립 파괴”를 외쳤다. 그러면서 같은 시기,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재판을 조속히 재개하라고 사법부에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삼권분립이 진짜 원칙이라면, 사법부에 특정 재판의 속도를 요구하는 것도 그 원칙에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런데 이 두 행동이 같은 세력에서 같은 주간에 나왔다. 잣대가 원칙이 아니라 편의를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탄핵하라”는 야당의 논리를 해부하면
국민의힘이 “왜 탄핵을 망설이냐”고 민주당에 물은 것은 표면상 도발이다. 그런데 이 발언의 내부 논리를 따라가면 이상한 지점에 도달한다. 야당이 여당에게 특정 탄핵 카드를 쓰라고 압박하는 구조 자체가, 탄핵을 정쟁 도구로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탄핵 카드를 꺼내라”고 종용하는 순간, 탄핵은 더 이상 헌법적 통제 수단이 아니라 게임의 말이 된다.
이를 뒤집어 보면, 야당의 발언은 사실상 “민주당이 탄핵을 추진하면 우리가 유리하다”는 정치적 계산의 노출이다. 탄핵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탄핵을 유인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조희대 탄핵에 신중한 이유는 탄핵이라는 수단 자체의 무게 때문이기도 하고, 지금 국면에서 탄핵 정국이 가져올 정치적 비용 계산 때문이기도 하다. 어느 쪽이든 그것은 집권 여당의 판단 영역이다. 야당이 그 판단에 “망설이냐”고 압박하는 것은 견제가 아니라 조종이다.
중앙일보 사설은 이 구조를 뒤집어, 민주당이 탄핵을 망설이는 것을 사법부 압박의 증거로 해석했다. 탄핵을 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인 논리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민주당이 나쁜 쪽으로 귀결되는 프레임을 미리 짜놓은 것이다.
200일 공백은 누가 설명할 것인가
이 논쟁에서 가장 실질적인 문제는 대법관 공백이다. 2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대법원의 특정 재판부는 정원을 채우지 못한 채 운영됐다. 대법원의 업무 공백은 결국 일반 국민의 재판 지연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삼권분립의 추상적 훼손이 아니라, 구체적 피해가 현실에 발생하고 있는 문제다.
그 공백의 책임을 묻는 것이 사법부 압박인가. 대법원장이 제청을 미루는 동안 그 자리를 비워둔 것은 누구의 선택인가. 국감장에서 이 질문을 받은 조희대 대법원장이 착석 관례를 깼다는 사실보다, 그 질문에 어떻게 답했는가가 더 중요한 뉴스다. 그런데 중앙일보 사설은 착석 여부, 즉 형식에 집중함으로써 내용을 밀어냈다.
형식 논쟁은 언제나 내용 논쟁을 흐리는 데 효과적이다. “어떻게 앉아 있었느냐”를 따지는 동안, “왜 200일이 됐느냐”는 질문은 사라진다.
공백의 원인을 보도하지 않은 채 여당의 문제 제기를 “사법부 길들이기”로 규정하는 것은 사실의 선택적 배치다. 그리고 그 배치는 언제나 특정 방향을 가리킨다. 중앙일보 사설이 가리키는 방향은 이번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삼권분립을 진지하게 걱정하는 논평이라면, 사법부 수장이 스스로 만들어낸 200일짜리 공백을 먼저 다뤄야 했다. 그게 빠진 삼권분립 논의는 원칙의 언어를 빌린 당파적 발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