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이 기사에서 원한 것은 딱 하나였다. 독자로 하여금 “여야 다 똑같네”라고 중얼거리게 만드는 것.
2025년, 민주당이 한동훈 딸의 논문 대필 의혹을 집중 제기했다. 경찰이 미국에 사법 공조를 요청하며 수사를 진행했으나, 검찰이 이를 반려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사 방해 논란까지 덧붙었다. 사건의 무게가 점점 한동훈 쪽으로 쏠리던 바로 그 시점, 한동훈은 김민석 민주당 대표 아들 이야기를 꺼냈다. 고교생 신분이던 아들이 동아리 활동에서 제안한 아이디어를 강득구 의원 등이 법안으로 발의했다는 것이다. 강득구 의원 측은 “좋은 제안이라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조선일보는 이 두 사안을 나란히 세웠다. 제목에 ‘쌍방 자녀 의혹 공방’이라는 표현이 붙었고, 기사 구성은 절반씩 두 사안을 다뤘다. 독자 입장에서 자연스럽게 읽히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한쪽이 공격하면 다른 쪽도 똑같이 공격하는, 서로 유리 집에 살면서 돌 던지는 정치판.’
두 사안이 같은 무게라는 주장의 근거는 없다
논문 대필 의혹은 형사 사건이다. 학문적 부정행위를 넘어, 경찰이 국제 사법 공조라는 상당한 자원을 투입한 수사 사안이다. 그 수사를 검찰이 반려했다는 것은, 사건이 가벼워서가 아니라 오히려 처리 과정 자체가 논쟁이 됐다는 의미다. 이 사건의 핵심은 단순히 “딸이 논문 표절을 했느냐”가 아니다. 수사 의지가 있었는데 윗선에서 막혔느냐, 그 윗선이 한동훈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로 번진다. 형사 절차와 권력의 관계가 의심받는 사안이다.
반면 김민석 아들 사안은 무엇인가. 고등학생이 교내 동아리에서 낸 아이디어를 의원들이 법안에 참고했다는 것이다. 공직자가 자기 자녀에게 예산을 몰아줬다거나, 인허가 과정에서 특혜를 줬다거나, 직위를 이용해 이익을 취했다는 내용이 없다. 아이디어 제안 자체는 시민 누구나 할 수 있는 행위이고, 의원이 그것을 채택했다는 것도 본래 입법의 일부다.
이 둘을 “쌍방 자녀 의혹”으로 묶는 것은 분류의 오류다. 사과와 축구공을 둘 다 ‘둥근 것’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그 분류가 둘을 동등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물론 반론도 있다. “고등학생 아들의 아이디어가 실제로 법안에 들어갔다는 것 자체가 인맥 특혜 아니냐”는 시각이다. 공직자 자녀라는 지위가 접근성을 높였을 가능성, 즉 구조적 특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이 반론은 진지하게 들을 필요가 있다. 의원실 문턱이 일반 시민에게는 높고 대표 자녀에게는 낮다면, 그 비대칭 자체는 짚어야 할 문제다.
그러나 그 반론이 성립하더라도, 그것이 “형사 수사를 받는 논문 대필 의혹과 동급”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반론은 특혜의 구조적 가능성을 묻는 것이고, 한동훈 딸 사안은 이미 수사가 진행된 구체적 행위에 관한 것이다. 레벨이 다르다.
조선일보가 진짜 한 일
조선일보 사설이 구사한 기법은 ‘도덕적 등가화’다. 두 사안의 성격을 따지지 않고 형식적 병렬을 통해 무게를 균등 배분하는 방식. 이 기법의 효과는 두 가지다. 첫째, 한동훈 측 의혹의 심각성이 절반으로 희석된다. 독자는 “저쪽도 있잖아”라는 생각과 함께 도덕적 판단을 유보한다. 둘째, 의혹을 제기한 민주당은 “자기 집 들여다보지 않고 남 집만 들여다보는” 파렴치한 집단으로 프레이밍된다.
이것이 양비론이 보수 언론에서 선택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이다. 양비론은 두 사안이 실제로 비슷한 성격일 때 공정한 분석 도구가 된다. 그러나 한쪽이 형사 수사 사안이고 다른 쪽이 입법 참고 사안일 때, 그것을 “공방”으로 묶는 것은 공정한 분석이 아니라 프레이밍이다. 조선일보는 양비론을 쓴 게 아니라, 양비론의 외관을 빌려 특정 사안을 희석한 것이다.
비교가 반박이 될 수 있으려면 비교 대상이 실제로 같아야 한다. 이번에는 같지 않다.
그리고 그 사실을 조선일보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