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훈식 비서실장이 캐나다 정부와 60조 원 규모 잠수함 수주 협상 테이블에 앉은 날짜는 2025년 6월이다. 같은 달, 그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용수 공급 문제에 관한 브리핑을 직접 서고, 민주당 의원 워크숍에서 집권 전략을 강연했다. 비서실장이 외교·산업·당 전략을 동시에 소화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논란거리가 못 된다. 그런데 중앙일보는 이 사람을 보도하기로 했다.
제목은 이렇다. “차기 리더로 뜨자 불편하다고 정색.”
기사 본문의 절반 이상은 실제로 강훈식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서술한다. 캐나다 협상, 반도체 클러스터, 워크숍 강연. 그런데 헤드라인이 설정한 독자의 독해 방향은 전혀 다른 곳을 가리킨다. 이 사람은 차기를 노리고 있고, 그걸 지적하자 불편해했다는 것. 독자는 본문을 읽기 전에 이미 ‘야망을 감추는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주입받는다. 이것이 헤드라인 프레이밍의 작동 방식이다.
보도가 선택하는 것, 보도가 지우는 것
중앙일보 기사를 구조적으로 뜯어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있다. 성과를 서술하는 문장들은 기사 안에 있다. 그러나 그 문장들은 ‘차기 정치인이 자신을 관리한다’는 내러티브의 배경 처리로 기능한다. 60조 원 수주 협상은 강훈식의 실무 능력을 보여주는 사건이 아니라, 그가 왜 주목을 받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맥락 자료로 소비된다.
이 구조가 만들어내는 효과는 명확하다. 잘하고 있는 참모를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부상하는 인물을 미리 프레임에 가둬두는 것. 성과는 야망의 증거로, 실무는 자기 홍보의 수단으로 독해되도록 유도한다. 독자는 기사를 다 읽고 나서도 ‘저 사람, 다음 선거 노리는 거 아냐?’라는 인상을 갖게 된다. 그게 이 기사가 원하는 결과다.
보수 언론이 현 정부 참모를 집중 조명하는 방식에는 반복되는 문법이 있다. 실적을 부정하지 않는다. 실적을 정치적 야심과 등치시킨다. 그러면 실적은 자연스럽게 ‘의심스러운 무언가’로 변환된다. 부정할 필요도 없다. 오염시키면 된다.
반론을 먼저 제시하자. 강훈식이 실제로 차기를 염두에 두고 정치적 행보를 계산하고 있다면?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순진하다. 현직 비서실장이라면 다음 권력 구도를 의식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정치적 생리다. 그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어렵다.
그런데 그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 보도의 프레이밍을 정당화하는가. 그렇지 않다. 취재의 출발점과 헤드라인의 설계는 별개의 문제다. ‘차기 가능성이 있는 인물’을 보도하는 것과, ‘차기를 숨기며 정색하는 인물’로 규정하고 보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저널리즘이다. 전자는 관찰이고, 후자는 판결이다.
중앙일보는 판결을 헤드라인에 먼저 써놓고 본문으로 증거를 끼워 맞췄다.
왜 지금인가
타이밍을 보면 이 보도의 의도가 더 선명해진다. 캐나다 잠수함 수주 협상은 현 정부가 밀어붙이는 방산 외교의 대표적 성과 후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용수 문제는 삼성과 SK가 직접 이해관계를 갖는 메가프로젝트다. 이것들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서사가 자리 잡으면, 현 정부의 국정 운영 능력에 대한 여론 평가가 달라진다.
이 기세를 가장 효과적으로 희석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성과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사실관계 앞에서 무너진다. 그러나 그 성과를 실무가 아닌 정치의 언어로 번역해버리면, 논의의 축이 이동한다. ‘협상이 잘 됐냐’는 질문이 ‘저 사람이 차기를 노리냐’는 질문으로 대체되는 순간, 국정 성과는 사라지고 인물 논란만 남는다.
보수 언론이 진보 정부의 참모를 다루는 방식이 꼭 이렇다. 실수를 기다리다 실수가 없으면, 성공을 야심의 증거로 읽는다. 어떤 경우에도 ‘이 정부가 일을 잘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도록 기사의 구조를 설계한다.
강훈식이 잘하고 있는가, 못하고 있는가. 그것을 따지고 싶다면 60조 원 협상의 실제 진행 상황을, 반도체 클러스터 용수 문제의 해결 여부를 취재하면 된다. 그 결과에 따라 비판하든 평가하든, 그게 정치부 저널리즘이 할 일이다.
차기를 노리느냐고 먼저 묻는 것은 취재가 아니다. 그것은 견제구다. 그리고 그 견제구를 지금 던지는 이유는, 차기 선거까지 아직 시간이 있다는 게 아니라, 현재 이 정부의 흐름이 그냥 두면 안 되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 “다음 선거 노리죠?”라고 먼저 묻는 언론은, 그 질문으로 무엇을 막으려 하는지를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