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사설 분석] 호남 반도체 시동 건 정권, 원전·댐 적대 정책 결별할 각오 섰나

조선일보 사설 한 편을 제대로 읽으려면, 먼저 그 사설이 무엇을 말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원하는지부터 봐야 한다.

지난주 김성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신규 원전 건설을 포함한 에너지 믹스를 검토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았다. 새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읽힌 이 발언이 나오자, 조선일보는 사설로 화답했다. 제목은 이렇다: “호남 반도체 시동 건 정권, 원전·댐 적대 정책 결별할 각오 섰나.” 새 정부가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호남 지역 투자 계획을 밝힌 맥락에서 쓴 사설이다.

표면만 읽으면 나름 현실적인 조언처럼 보인다. 반도체 공장을 돌리려면 전력이 필요하고, 전력이 필요하면 원전을 늘려야 하고, 물도 필요하니 댐도 다시 생각해야 하지 않겠냐는 논리다. 그런데 이 사설에는 독특한 구조가 있다. 반도체라는 산업 현실을 앞에 세우고, 그 뒤에 탈원전과 4대강 보 해체 정책에 대한 전면적 부정 요구를 슬쩍 붙여 놨다. 반도체 걱정으로 시작해서 이념 청산 요구로 끝나는 글이다.

5280만 톤이라는 숫자

사설은 4대강 보 해체로 인해 연간 5280만 톤의 용수 공급 능력이 손실됐다고 주장한다. 꽤 구체적인 숫자다. 그런데 이 수치의 출처를 따라가면 문제가 생긴다. 이 추정치는 4대강 보의 저수 용량을 단순 합산하는 방식으로 산출된 것으로, 실제 가용 용수량과는 다르다. 보가 존재한다고 해서 그 물이 전부 산업용·생활용으로 인출 가능한 형태로 존재하는 건 아니다. 수리학적으로 보의 수위 유지와 실제 취수 가능량은 별개의 계산을 요구한다. 환경부와 수자원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 수치가 과대추정이라는 지적이 이미 제기됐음에도, 사설은 이를 확정된 손실로 서술했다.

4대강 보의 녹조 문제는 이 사설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2022년 환경부 조사에서 낙동강 일부 구간의 남세균 독소 농도가 수돗물 원수로 사용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검출됐다는 결과도, 보 존치가 하류 수질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국립환경과학원 연구도 없다. 용수 공급 문제는 팩트로 다루면서 수질 문제는 팩트에서 제외하는 방식이다. 이게 취사선택이 아니면 무엇인가.

미국과 일본의 댐 건설 사례를 “글로벌 흐름”으로 언급한 부분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두 나라에서 최근 논의되는 댐 또는 저수지 확충은 대부분 극단적 가뭄과 홍수가 반복되는 기후위기 대응 차원에서 추진되는 것이다. 캘리포니아가 수십 년 만에 댐 증설을 다시 검토한 건 맞다. 하지만 그 논의의 배경은 산업용 용수 확보보다 기후 변동성 확대에 따른 광역 수자원 관리 실패에서 출발했다. 같은 현상을 목적과 맥락을 지운 채 가져오면, 사례가 아니라 장식이 된다.

이 사설이 정말로 원하는 것

조선일보가 이 사설에서 실제로 요구하는 건 명확하다. 새 정부가 에너지와 수자원 정책에서 진보 진영의 과거 기조와 공개적으로 단절하라는 것이다. 원전 검토나 수자원 정책 재검토를 기술·산업적 필요로 다루는 게 아니라, 이념적 자기부정의 형식으로 수행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 요구가 왜 문제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정책 전환을 이념 청산의 언어로 강요하면, 그 전환은 실질적 근거 위에 서지 못한다. 반도체 공장의 전력 수요는 실제로 존재하는 문제다. 에너지 믹스 재검토는 충분히 진지한 논의가 가능하다. 그런데 그 논의가 “탈원전이라는 종교를 버려라”는 프레임 위에서 시작되는 순간, 반론은 억압되고 정책은 점검 없이 뒤집히게 된다. 그것은 정책 토론이 아니라 정치적 굴복 의식이다.

새 정부가 원전 확대로 방향을 잡는다면, 그 근거는 kWh당 발전 비용, 계통 안정성, 사용후핵연료 처리 비용 포함 여부, SMR 기술의 현재 상용화 단계 같은 것들이어야 한다. 조선일보식 사설이 요구하는 “결별 선언”이 아니라. 마찬가지로 수자원 정책도 취수 가능량과 수질 영향을 동시에 고려하는 실증적 검토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5280만 톤이라는 숫자 하나를 검증 없이 수용하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

반론 하나를 직접 가져오겠다. “보수 언론이 프레임을 설정했다고 해서 그 안에 담긴 문제 제기 자체가 무효는 아니지 않냐.” 맞다. 반도체 산업의 전력·용수 수요는 진짜 문제고,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산업 현장이 감당해야 할 비용도 진지하게 따져야 한다. 그 문제 제기를 무시하라는 게 아니다. 그러나 정당한 문제 제기가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을 감싸고 있는 프레임까지 덩달아 정당해지는 건 아니다. 진짜 문제를 이념 청산 요구의 외피로 포장했을 때, 그 포장지는 걷어내야 한다. 내용물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포장지를 걷어내야 내용물을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사설이 반도체 경쟁력을 걱정하는 척 쓰인 글이라고 말하면, 누군가는 과도한 해석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면 이 질문으로 답을 대신하겠다. 같은 주장을 담은 글에서, 왜 반도체 수요 추계나 용수 공급 대안 기술 논의는 없고 “결별할 각오”라는 표현이 제목을 차지하고 있는가. 산업 정책 조언에서 “각오”를 묻는 일은 드물다. 그건 정책 제안이 아니라 정치적 시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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