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6일, 조희대 대법원장은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장에 출석해 기관장 인사말을 마친 뒤 일반 증인 선서를 거부했다. 그리고 자리를 떴다. 아니, 떠려 했다.
서영교 위원장이 이석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여야가 충돌했고, 국민의힘은 ‘강제 감금’이라는 말을 꺼냈다. 보수 언론들은 그 혼란을 ‘민주당의 사법부 길들이기’라는 제목으로 받아쳤다. 프레임이 세팅되는 속도가 제법 빨랐다.
그런데 잠깐. 조 대법원장이 이날 자리를 피하려 한 것은 즉흥적인 항의가 아니었다. 그는 이미 사전에 일반 증인 출석이 어렵다는 사유서를 국회에 제출해둔 상태였다. 선서를 거부하고 자리를 떠나는 행위가 즉석에서 터진 충돌이 아니라 사전에 계획된 거부였다는 뜻이다. 이 대목에서 ‘피해자 서사’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조 대법원장이 왜 일반 증인으로 채택됐는지부터 짚어야 이 사태가 제대로 보인다.
올해 8월, 조 대법원장은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대법관 후보로 제청했다. 청와대는 재제청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조 대법원장은 3주 넘게 아무런 답을 내놓지 않다가 지난달 말 전격적으로 거부를 선언했다. 이 과정에서 대법관 공석은 215일을 넘겼다. 그 자리가 비어 있는 동안 대법원에는 사건이 쌓였고, 판결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시간도 함께 쌓였다.
국회가 이 사안을 검증 테이블 위에 올린 것은 삼권분립 원칙을 위반한 게 아니다. 삼권분립은 서로 독립하라는 말이 아니라 서로 견제하라는 말이다. 입법부가 사법행정의 공적 권한 행사를 들여다보는 것은 그 견제 기능의 정석에 해당한다. 국회증언감정법은 증인으로 채택된 사람은 누구든 선서 의무를 진다고 명시하고 있고, 대법원장에 대한 예외 조항은 없다.
여기서 보수 언론과 국민의힘이 내세운 논리를 직접 다뤄야 한다.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삼권분립에 어긋나는 국회의 횡포이자 갑질’이라고 했고, ‘대법원장 국감 일반증인 출석 7불가론’을 들고 나왔다. 보수 언론도 ‘사법권 침해’라는 프레임을 전면에 배치했다.
이 프레임의 논리 구조를 풀면 이렇다. 사법부 독립 → 대법원장은 국회 증언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 선서 거부는 정당한 사법부 수호다.
그런데 ‘사법부 독립’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따져보면 이 논리는 첫 단계에서 이미 무너진다. 사법부 독립이란 법관이 판결을 내릴 때 정치 압력에 종속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재판의 내용에 정치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 사법행정과 인사권 행사에 대한 외부 검증까지 면제받는다는 개념이 아니다. 조 대법원장은 이날 국감장에서 대법관 제청 경위를 직접 설명했다. 선서 없이 설명한 것과 선서하고 설명한 것의 실질적 차이는 하나다. 위증 책임이다. 선서를 거부한 채 발언하면 그 내용이 사실과 달라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조 대법원장의 선서 거부는 ‘사법부를 지키기 위한 결단’이 아니라, 자신의 발언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이었다. 이것을 보수 언론은 헌법 수호의 언어로 포장했다.
이중 기준의 문제는 더 선명하다.
국민의힘은 야당 시절, 정부 기관장이 국감에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국회 무시’, ‘민주주의 훼손’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 논리라면 지금 대법원장의 선서 거부와 이석 시도는 국회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그것을 ‘헌정 수호’라고 불렀다.
자기 진영에 불리한 국감 증언 거부는 ‘국회 무시’이고, 자기 진영과 이해관계를 함께하는 인물의 거부는 ‘사법 수호’가 된다면, 그것은 원칙이 아니라 진영 논리다. 원칙이란 상황이 불리할 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 국민의힘이 들고 있는 것은 삼권분립의 방패가 아니다.
다만 한 가지는 구분해야 한다.
민주당이 물리적으로 이석을 막은 방식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 절차적으로는 국회 동행명령이나 고발 같은 법적 강제 수단을 먼저 검토하는 것이 더 정교한 대응이었을 수 있다. 국회가 감시 기능을 행사할 권한이 있다 해도, 그 방식이 법적으로 허용된 범위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은 여당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기준이다.
그러나 방식을 비판하는 것과, 그 혼란의 발단을 민주당에 돌리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오늘 사태의 시작은 대법원장이 사전에 불출석 사유서를 내고, 선서를 거부하고, 이석하려 한 데 있다. 방식 논란이 그 본질을 덮는 데 이용된다면, 그건 프레임의 또 다른 변주일 뿐이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민주주의의 구조적 위협이다. 그것이 대통령이든, 국회든, 대법원장이든 다르지 않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215일 넘게 공석으로 남겨둔 대법관 자리, 그 빈자리로 인해 지연된 재판들, 그리고 그 경위에 대해 선서 없이 말하려 한 행위. 이것이 오늘 사태의 실체다.
‘사법부 독립’은 판결의 독립을 지키기 위한 원칙이다. 그것이 책임 회피의 언어로 전용되는 순간, 원칙은 방패가 아니라 면죄부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