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사설 분석] 2년째 대법원장 모욕·협박, 민주주의 흔드는 민주당 정권

조선일보는 지난주 사설에서 국정감사장의 한 장면을 “민주주의를 흔드는 행위”로 규정했다. 10월 6일 대법원 국감, 민주당 의원들이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날을 세웠고, 조선일보는 이를 두고 “2년째 대법원장 모욕·협박”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모욕. 협박. 단어 선택부터가 의도적이다.

국정감사는 헌법 제61조가 보장한 국회의 권한이다. 행정부를 감시하고, 예산이 어디에 쓰이는지 따지고, 필요하면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국감의 존재 이유다. 그 과정에서 피감기관의 수장이 불편해지는 건 버그가 아니라 설계대로다. 조선일보는 그 설계 자체를 “모욕”이라고 불렀다.

삼권분립이라는 방패

조선일보 사설의 논리 구조는 단순하다. 사법부는 독립적이어야 하고, 그 독립을 건드리는 것은 삼권분립 침해라는 것이다. 외관상 그럴싸하다. 사법부의 독립은 실제로 중요한 헌정 가치다.

그러나 이 논리에는 빠진 반쪽이 있다. 삼권분립은 세 권력이 서로를 견제한다는 원리다. 사법부가 행정부·입법부로부터 독립한다는 것과, 사법부가 아무런 민주적 통제 밖에 놓인다는 것은 전혀 다른 말이다. 조선일보는 이 두 개를 슬쩍 합쳐 놓는다.

실제로 조희대 대법원장의 행보를 보자. 그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의 판단이니 절차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국회가 추천한 대법관 후보를 재임 중 두 차례 재제청 거부했다. 입법부가 추천 권한을 행사했는데, 사법부 수장이 그것을 연거푸 무시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 대목에서 삼권분립을 언급하지 않는다. 행정부나 입법부가 사법부에 관여하면 즉각 삼권분립 침해를 외치지만, 사법부가 입법부의 결정을 밀쳐낼 때는 침묵한다. 원칙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꺼내는 논리다.

“협박”이라는 단어가 하는 일

조선일보가 굳이 “모욕”과 “협박”이라는 단어를 제목에 박은 데는 이유가 있다. 이 단어들은 국감 행위를 법적·도덕적으로 문제 있는 행위로 성격 규정한다. 국회의원이 대법원장에게 날 선 질의를 했다는 사실은 동일하지만, 그걸 “견제”라고 부르는 것과 “협박”이라고 부르는 것은 전혀 다른 그림을 만들어낸다.

국감장에서 오간 구체적 발언이 실제로 개인의 신변을 위협하거나 사법 판단에 부당한 압력을 넣은 수준이었다면, 그건 당연히 비판받아야 한다. 그 기준에서 조선일보는 무엇을 근거로 “협박”이라고 했나. 사설 본문에서 그 판단의 근거는 선명하지 않다. 장면을 혐오스럽게 묘사하는 방식으로 독자의 판단을 유도할 뿐이다.

이것이 조선일보 사설이 자주 쓰는 방식이다. 팩트를 부정하지 않는다. 대신 팩트 위에 특정 감정을 입힌다. 그 감정이 곧 독자의 판단이 되도록 설계한다.

이 사설이 보호하려는 것

국감에서 불편한 질문을 받는 대법원장을 조선일보가 열렬히 옹호하는 맥락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 사설이 무엇을 지키려는 것인지가 보인다. 조희대 사법부는 현재 여당과 갈등 관계에 있다. 대법관 재제청 거부, 파기환송 판결, 국회와의 마찰. 이 모든 것이 야당 입장에서는 현 정부를 견제하는 사법부라는 그림으로 읽힌다.

조선일보가 사법부 독립을 외치는 것은 사법부 일반을 지키려는 것이 아니다. 현재 이 특정한 사법부 구성을 지키려는 것이다. 여당이 사법부와 갈등할 때만 삼권분립을 내세우고, 사법부가 입법부 결정을 무시할 때는 삼권분립을 내려놓는 것이 그 증거다.

국감이라는 도구는 조선일보도 과거에 옹호한 적이 있다. 야당이 정부를 몰아붙일 때, 국감은 민주주의의 꽃이었다. 지금은 같은 도구가 “협박”이 됐다. 바뀐 것은 국감의 성격이 아니라 누가 감시받는가다.

국회가 대법원장에게 날 선 질문을 하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를 흔드는 일인지,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일인지. 답은 이미 헌법 조문 안에 있다.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