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기사 분석] 호남에 반도체 공장 투자하면 관치인가?

“기업 자율”은 왜 호남 반도체 공장 앞에서만 나오는가

반도체 공장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호남 지역 반도체 공장 투자를 검토한다는 소식이 나오자마자 국민의힘은 “기업 팔목 비틀기”라는 표현을 꺼내 들었습니다. 매일경제는 그 논조를 받아 사설로 확장했습니다. “기업의 자율적 경영 판단을 정치가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 핵심 주장입니다.

그런데 지도를 한번 펼쳐보겠습니다.

삼성전자의 핵심 생산 거점은 경기도 기흥·화성·평택입니다. SK하이닉스의 주력 공장은 경기도 이천과 충북 청주에 있습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도 경기도입니다. 천안·아산까지 포함하면 한국 반도체 투자의 절대다수가 수도권과 충청권에 집중돼 있습니다. 호남에는 반도체 생산 인프라가 사실상 없습니다.

그 상황에서 기업들이 호남 투자를 검토하자 “표 계산”, “팔목 비틀기”라는 언어가 나왔습니다.

빠진 질문

매일경제 사설의 구조는 단순합니다. “기업 자율 = 선, 정치 개입 = 악”이라는 이분법을 깔고, 호남 투자 논의를 곧바로 “정치 개입”의 범주로 밀어 넣습니다. 그런데 이 프레임에는 결정적인 질문이 빠져 있습니다.

수도권과 충청 클러스터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평택 반도체 단지, 용인 클러스터, 청주 하이닉스 공장이 기업이 알아서 허허벌판에 세운 것이 아닙니다. 정부는 수십 년에 걸쳐 해당 지역의 도로, 전력망, 용수 공급, 산업단지 인허가를 선제적으로 정비했습니다.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도 있었습니다. 그게 산업 인프라 정책입니다.

그걸 누가 “관치”라고 불렀습니까. 매일경제도, 국민의힘도, 그 시절엔 침묵했습니다.

기존 클러스터에 투자하면 기업 자율이고, 호남에 투자하면 관치입니다. 같은 행위를 다른 언어로 부르는 것, 그게 프레임 정치입니다.

“기업 자율”이 지키는 것

“기업 자율”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나쁜 말이 아닙니다. 문제는 어떤 맥락에서 소환되느냐입니다.

지역 불균형이 심화된 상태에서 기업이 알아서 결정하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인력도, 부품 공급망도, 물류도 수도권·충청권에 집중돼 있으니 당연히 그쪽으로 갑니다. 그 상태에서 “기업 자율에 맡기자”는 말은 현재의 불균형을 기득권으로 고착화하자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경제지리학에서 집적 효과(agglomeration effect)라고 부르는 현상입니다. 한번 형성된 클러스터는 스스로 재생산됩니다. 국가가 의도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 자본은 이미 자본이 있는 곳으로 갑니다. 이걸 모를 매일경제가 아닙니다. 알면서 말하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 더. 지역균형발전은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 근거한 헌법적 가치입니다. 이걸 “표 계산”으로 환원하는 순간, 그 언어 자체가 이미 정치적입니다. 지역균형발전을 진보 정권의 정략으로 낙인찍어, 보수 정권 시절의 수도권·충청 집중 투자를 “정치 중립적 기업 자율”로 세탁하는 정치입니다.

비일관성이 말해주는 것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당시 정부의 적극적 인허가 지원과 세제 혜택에 “관치”라고 했습니까. 평택 고덕 산업단지에 수조 원의 인프라 예산이 투입될 때 “팔목 비틀기”라고 했습니까.

그런 말이 나온 적이 없습니다. 용인 클러스터도 처음엔 허허벌판이었습니다. 모든 산업 기반은 누군가 처음 만드는 것이고, 그 “누군가”가 정부와 기업의 협력이었다는 사실을 매일경제는 왜 호남 앞에서만 잊어버립니까.

같은 논리가 호남에 적용되자마자 전혀 다른 언어가 등장합니다. 이 비일관성이야말로 “표 계산”이라는 비판이 향해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를 정확하게 알려줍니다.

정치가 기업 투자를 정략에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감시는 언론의 정당한 역할입니다. 그러나 그 감시가 특정 지역을 향할 때만 작동한다면, 그건 감시가 아니라 기득권 수호입니다.

“기업 자율”을 호남 앞에서만 꺼내 드는 언론과 정당이야말로, 가장 노골적인 지역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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