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유시민은 이재명 대통령의 외연 확장 전략을 “기존 입주자 동의 없는 재건축”이라고 불렀다. 비유치고는 꽤 정교하다. 아파트 재건축에 빗댔으니 피부에 와닿기도 한다. 그런데 이 비유가 전제하는 것이 있다. 민주당에 “기존 입주자”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동의가 정당 운영의 선결 조건이라는 것이다.
그 전제를 그냥 넘기면 안 된다.
유시민은 정청래 대표 연임을 지지했다. 외연 확장론에 맞서는 포지션이다. 겉으로는 내부 토론처럼 보이지만, 실질은 다르다. 유시민은 현재 민주당 당원이 아니다.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라는 직함은 있지만, 당내 어떤 공식 직위도 없다. 그가 발언할 자격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발언이 갖는 무게가 “시민 논객의 의견”이 아니라 “당의 방향을 정하는 영향력”으로 작동할 때, 우리는 그 영향력의 근거를 물어야 한다.
대체 누가 그에게 “기존 입주자” 대표 자격을 부여했나.
유시민 스스로 묻는다면 아마 이렇게 답할 것이다. 오랜 시간 이 정치 노선을 지켜온 사람으로서 발언하는 것이라고. 그건 존중할 수 있다. 그러나 “오래 있었다”는 사실이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한다”는 결정권을 만들지는 않는다. 그건 경험이 아니라 기득권이다.
외연 확장이라는 말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잠깐 짚어야 한다.
이재명 정부의 외연 확장론은 지금까지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았던 유권자층, 특히 중도·무당층을 정치적 지지 기반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이다. 선거 결과로 보면 이것은 이론이 아니다. 2022년 대선에서 민주당은 0.73%포인트 차로 졌다. 2024년 총선에서는 압도적으로 이겼지만, 그 승리는 국민의힘의 자멸과 탄핵 정국이라는 맥락이 컸다. 민주당이 본질적으로 확장된 것인지는 여전히 물음표다.
외연 확장의 핵심은 지지층을 교체하는 것이 아니다. 문을 더 넓게 여는 것이다. 기존 지지자가 이탈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유시민이 이것을 “기존 입주자 무시”로 읽는다면, 그는 확장을 제로섬 게임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민주주의 정당이 그렇게 작동해서는 안 된다. 정당은 특정 세대나 특정 시대적 경험을 공유하는 집단의 사유물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를 경험했고, 문재인 정부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이 당의 정체성을 구성한 것은 맞다. 그러나 그 역사적 기여가 미래 방향에 대한 거부권이 되면, 당은 과거의 포로가 된다.
여기서 유시민을 옹호하는 가장 강한 논리를 직접 끌어와야 한다.
“당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은 정당한 비판이다. 외연 확장이라는 이름 아래 당의 핵심 가치가 희석된다면, 그것은 확장이 아니라 변질이다.”
이 반론은 진지하게 받아들일 가치가 있다. 외연 확장이 실제로 원칙 없는 노선 이탈로 이어진다면, 그건 문제다. 역사적으로 중도 확장을 내세우다 정체성을 잃어버린 진보·좌파 정당들의 사례는 유럽에도 많다. 영국 노동당이 블레어 시기에 경험한 것이 그 전형이다.
그런데 유시민이 그 지점을 비판하고 있는가? 그의 발언을 살펴보면 “어떤 가치가 희석되고 있다”는 내용 비판이 아니다. 그의 비판은 구조적이다. 입주자 동의 없이 재건축하지 말라는 것, 즉 과정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런데 과정 비판이라면 민주당 내부의 의사결정 절차를 문제 삼아야 한다. 당원 투표가 무시됐나? 대의기구가 우회됐나? 그런 근거가 유시민의 발언에는 없다. 있는 것은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감각뿐이다.
그 감각을 민심이라고 부르는 것, 그것이 진짜 문제다.
유시민은 오랫동안 예리한 논객이었다. 그의 글쓰기와 정치적 직관을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 평가는 근거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예리함과 정확함은 다르다. 예리한 사람도 자신의 감각이 보편이라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 오히려 오랫동안 특정 집단 내에서 존중받아온 사람일수록 그 착각에 빠지기 쉽다. 주변이 동의해주니까.
자신의 감각을 “기존 입주자”로 명명하고, 그것이 침해당하고 있다고 느낄 때, 그 감각은 비평의 언어를 빌리지만 실제로는 저항의 감정이다. 이재명식 전략이 자신의 세계를 흔들고 있다는 불편함. 그 불편함을 분석으로 포장할 때, 논객은 논객이 아니라 기존 질서의 수호자가 된다.
민주당이 누구의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유시민의 암묵적 답은 “우리 것”이다. 그 “우리”가 특정 시대, 특정 노선, 특정 경험을 공유하는 집단을 가리킬 때, 그 주장은 보수성을 띤다. 노선의 보수성이 아니라, 구조의 보수성이다. 변화를 막으려는 방향성의 보수성.
민주당이 과거의 기억을 지키는 박물관이어야 한다면, 유시민의 발언은 정당하다. 그러나 민주당이 현재의 다수를 대표하는 정치 세력이어야 한다면, 유시민이 말하는 “입주자 동의”는 그냥 거부권의 다른 이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