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사설 분석] 우크라 대응, 대통령이 공개적, 감정적으로 나서야 했나

2025년 5월, 이재명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측과의 포로 송환 협의 과정에서 이례적으로 감정이 실린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다.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조선일보는 이 표현을 즉각 사설로 받아쳤다. 외교의 품위를 모르는 대통령, 일반인 말다툼 수준의 언어, 감정적 대응이라는 세 단어로 요약되는 비판이었다.

그런데 조선일보가 사설 내내 말하지 않은 게 있다. 왜 대통령이 그 말을 했느냐다.


우크라이나 측은 포로 송환 협의 과정에서 비공개를 먼저 요청했다. 한국이 수용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가 이를 먼저 공개했다. 외교 합의를 먼저 어긴 쪽은 한국이 아니었다. 조선일보 사설이 시작해야 할 지점은 바로 여기인데, 사설은 이 사실을 앞에 두지 않는다. 대신 대통령의 발언 톤에서 시작해서 “외교적 결례”를 대통령 쪽으로 귀속시킨다. 이것이 이 사설이 설정한 프레임의 핵심이다. 먼저 합의를 어긴 쪽을 지우고, 이에 항의한 쪽의 언어를 문제 삼는 구조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누군가 먼저 계약서를 파기했고, 상대방이 “당신이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고 항의했다. 이 장면에서 “그 말투가 너무 직접적이지 않았느냐”고 따지는 건 분석이 아니라 회피다.

“감정적”이라는 말의 편의적 용법

“감정적 외교”라는 비판은 사실 꽤 무서운 개념이다. 쓰기에 따라 무엇이든 덮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분노를 표현하면 감정적이고, 냉정하게 압박하면 외교적 결례가 되고, 조용히 있으면 무능이 된다. 이 세 가지 기준을 동시에 들이대면 어떤 외교 행위도 비판할 수 있다.

실제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동맹국 정상들에게 공개 플랫폼에서 매일같이 압박을 가한다. 무역 보복을 거리낌 없이 공언하고, 동맹 기여도를 공개적으로 품평한다. 조선일보가 트럼프의 그 발언들을 두고 “일반인 말다툼 수준”이라거나 “외교적 품위가 없다”고 사설을 쓴 적이 있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기준이 적용되는 방식이 이렇게 다를 때, 그 기준은 외교 원칙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에 관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이 다소 직접적이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외교의 관례적 언어가 모호함과 여백을 선호한다는 것도 맞다. 그러나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는 표현은 먼저 합의를 어긴 상대에게 한국의 입장을 명확히 전달한 발언이다. 이것을 분노의 분출로 읽을 수도 있고, 합의 위반에 대한 공식적 항의의 언어로 읽을 수도 있다. 조선일보는 전자로만 읽었다.

레버리지를 “협박”이라 부를 때

사설은 이 대통령이 추가 지원 조치와 관련해 시사한 발언을 “협박”으로 표현했다. 그런데 합의를 어긴 상대국에 대해 향후 협력의 조건을 재검토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는 것은 외교에서 레버리지의 기본 형태다. 이걸 협박이라고 부르면, 외교적 압박 수단을 갖는 모든 국가의 모든 외교 행위는 다 협박이 된다.

조선일보가 이 단어를 선택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레버리지”와 “협박”은 외연이 비슷하지만 함의가 전혀 다르다. 레버리지는 전략적 행위이고, 협박은 감정적 일탈이다. 대통령의 발언을 “감정적”으로 규정한 사설이 이 단어를 택한 건 우연이 아니다. 이 프레임은 일관되게 하나의 방향을 향한다. 이 대통령의 외교 행위 전체를 충동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으로 그리는 것.


조선일보 사설이 권고하는 대안은 “조용한 외교”다. 외교적 채널을 통해 항의하고, 공개적으로 감정을 노출하지 않으며, 신중하게 해결책을 모색하라는 것이다. 이 조언 자체가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그 조언이 전제하는 것이다. 조용히 했을 때 우크라이나가 합의 위반을 인정하고 사과했느냐는 질문에, 조선일보는 답을 내놓지 않는다.

외교의 조용함은 미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조용함이 아무런 결과를 만들지 못할 때, 그 조용함은 품위가 아니라 무력함이 된다. 결과를 기다리지 않은 채 과정의 언어만 비판하는 것은, 비판의 기준이 외교적 효과가 아니라 다른 어딘가에 있다는 뜻이다.

조선일보가 이 사설에서 정말 걱정한 것이 한국 외교의 품격이었다면, 사설은 우크라이나의 합의 위반이라는 사실에서 시작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위반에 한국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하는지를 물었어야 한다. 그 질문을 건너뛰고 대통령의 발언 톤으로 곧장 달려간 사설은, 외교 논평이 아니라 정치적 공격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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