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사설 분석] 오세훈, 1심 뒤집은 무죄에 울컥…보수 주도권 거머쥐었다

2025년 4월, 서울고등법원은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명태균에게 여론조사를 의뢰하고 3,300만 원을 대납시킨 혐의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지 약 1년 만이었다. 법원은 대납 사실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공직선거법상 기부행위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봤다.

중앙일보는 이 판결이 나온 당일, 사설 제목을 이렇게 뽑았다. “오세훈, 1심 뒤집은 무죄에 울컥…보수 주도권 거머쥐었다.” 사설 제목에 “보수 주도권”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 자체가 이미 이 글이 법률 분석이 아닌 정치 기획임을 자백한다.


항소심 무죄는 무죄가 아니다, 정확히는 아직 아니다.

오해를 막기 위해 명확히 해두자. 항소심 무죄 판결은 사법 절차의 종착점이 아니다. 검찰이 상고하면 대법원에서 다시 판단한다. 대법원이 원심을 파기하고 유죄 취지로 환송한 사례는 우리 사법사에서 낯선 일이 아니다. 2심 무죄는 법리적으로 중요하지만, 그것이 확정 판결과 동일한 무게를 갖지는 않는다.

중앙일보가 이 기초적인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알면서도 “보수 주도권”이라는 정치적 결론을 제목에 박아 넣었다. 그렇다면 이 사설이 하려던 일은 법 해석이 아니라 서사 구성이다. 항소심 무죄를 기점으로, 오세훈의 정치적 재활 이야기를 대법원 판결 이전에 미리 완성해두려는 것이다.

이 구조는 낯설지 않다. 보수 언론은 자기편에 유리한 사법 판단이 나오면 “사법부가 진실을 밝혔다”고 쓰고, 불리한 판단이 나오면 “정치 검찰의 표적 수사”라고 쓴다. 사법부의 권위는 결론에 따라 선택적으로 호출된다. 오늘 중앙일보가 한 것도 그 패턴이다.


여기서 반론 하나를 직접 꺼내야 한다.

“언론이 무죄 판결을 보도하고 정치적 함의를 분석하는 게 뭐가 문제냐”는 반론은 정당하다. 판결은 그 자체로 정치적 사건이고, 언론이 그 파장을 다루는 것은 당연한 역할이다. 오세훈이 잠재적 대선 주자라면 더욱 그렇다.

맞다. 판결 보도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중앙일보가 사설에서 ‘분석’과 ‘결론’을 뒤바꿔 놓았다는 점이다. “무죄가 나왔다, 이것이 정치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분석과 “보수 주도권을 거머쥐었다”는 선언은 다르다. 전자는 저널리즘이고, 후자는 응원이다. 중앙일보가 쓴 것은 후자다.

더 정확히 말하면, 중앙일보 사설은 독자에게 선택지를 주지 않는다. 항소심 무죄가 정치적 정당성으로 자동 전환되는 등식을 제목에서 이미 완성해놓고, 본문은 그 결론을 꾸미는 역할을 한다. 이것은 분석이 아니라 프레이밍이다.


명태균 사건은 오세훈의 혐의가 전부가 아니다.

이것이 이 칼럼에서 반드시 짚어야 할 지점이다. 명태균 사건은 현재도 수사와 재판이 동시에 진행 중인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명태균 본인의 재판, 관련된 다수 정치인들의 연루 의혹, 여론조사 조작 의혹의 실체 등이 여전히 법정 안에 있다. 오세훈의 이번 혐의는 그 사건의 한 부분이었고, 항소심 무죄는 그 한 부분에 대한 판단이다.

중앙일보 사설은 이 맥락을 지웠다. 오세훈 무죄 = 명태균 사건 종결이라는 구도를 독자 머릿속에 만들어놓기 위해, 사건 전체의 그림을 의도적으로 축소했다. 이것은 생략을 통한 왜곡이다.

언론이 독자를 상대로 하는 가장 효과적인 조작은 거짓말이 아니다. 선택적 생략이다. 중앙일보는 오늘 이 방법을 썼다.


오세훈이 대선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가, 없는가는 별개의 질문이다. 그것은 그의 서울시장 임기 성과, 정책 비전, 당내 입지, 유권자 지지율 등 복합적인 요소로 판단해야 한다. 항소심 무죄 하나로 “보수 주도권”이 결정되는 게 아닌 것은 정치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그런데 중앙일보는 그 복잡한 질문을 판결 하나로 단순화했다. 그것이 보수 진영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며 신중하게 보도하는 것보다, 지금 당장 “주도권”이라는 단어를 제목에 넣는 것이 특정 정치 세력에게 더 즉각적인 이익을 준다.

사설이라는 형식은 원래 신문사의 입장을 밝히는 글이다. 중앙일보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밝히는 것은 금지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독자는 그것이 분석인지 응원인지를 구별할 권리가 있다. 중앙일보가 오늘 쓴 것은 분석의 형식을 빌린 응원이다. 그 사실을 독자에게 알리는 것, 그것이 이 글의 역할이다.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에 서사를 완성하는 것은 언론의 일이 아니다. 그건 캠프가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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