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사설 분석] 청년들 분노가 삼킨 프랑스, ‘퍼주기 중독’ 한국의 미래다

조선일보가 프랑스 시위를 다룬 사설을 낸 것은 2025년 봄이었다. 제목은 “청년들 분노가 삼킨 프랑스, ‘퍼주기 중독’ 한국의 미래다”였다. 한국 독자들에게 경고를 던지는 형식이었지만, 그 경고의 재료가 된 프랑스 시위의 원인을 사설은 정반대로 읽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학생들이 거리로 나온 직접적 계기는 교육 예산 삭감이었다. 마크롱 정부가 재정 적자를 줄이겠다고 고등학교와 대학교 예산을 축소하면서 교사 임금이 동결되고, 일부 지역 학교는 수업 시수가 줄었다. 학생들은 “우리 교실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이것이 시위의 기폭제였다. 복지를 너무 많이 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주던 것을 빼앗겼기 때문에 학생들이 분노한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은 이 인과를 뒤집었다.

사설의 논리 구조는 이렇다. 프랑스는 오랜 복지 지출로 재정이 망가졌고, 그 누적된 모순이 시위로 폭발했다. 한국도 지금 복지를 계속 늘리면 같은 길을 걷게 된다. 결론은 이재명 정부의 지출 확대가 위험하다는 것이다. 프랑스 학생들의 고통을 현 정부 때리기의 소재로 사용한 셈인데, 그 고통의 원인을 거꾸로 설명하면서 논리를 세웠다.


비교 자체가 작동하려면 수치가 맞아야 한다.

프랑스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24년 기준 약 112퍼센트다. 한국은 같은 시점 기준으로 약 50퍼센트 내외다. 두 배가 넘는 차이다. 재정 구조의 역사적 맥락도 다르다.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사회보험 체계를 운영하고 있고, 그 누적 구조 위에서 재정 압박이 쌓였다. 한국은 그 구조 자체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노인 빈곤율 OECD 1위, 합계출산율 세계 최저라는 수치는 오히려 복지 지출이 부족한 나라임을 보여준다.

이 두 나라를 “퍼주기 중독”이라는 하나의 틀로 묶는 것은 비유가 아니라 왜곡이다.

조선일보가 이 비교를 성립시키려면 한국의 복지 지출이 이미 과도하다는 전제를 독자들이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사설은 수치를 구체적으로 나열하지 않는다. “퍼주기 중독”이라는 표현 자체가 수치 없이 감각을 작동시키는 장치다. 중독이라는 단어는 의존성과 자기 파괴를 내포한다. 복지를 마약에 비유하는 오래된 보수 언론의 수사법이다.

여기서 반론 하나를 들여와야 공정하다. 프랑스 재정 위기가 오롯이 긴축 탓만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프랑스의 복지 지출 규모는 GDP 대비 30퍼센트를 훌쩍 넘고, 이 구조 자체가 재정 경직성을 만들어낸 것도 사실이다. 마크롱이 긴축을 시도한 것도 그 구조적 압박에서 나온 선택이었다. 그러니 복지 지출 규모가 재정 문제와 아무 관계없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이 사실이 조선일보 사설을 구해주지는 않는다. 프랑스 시위가 과도한 복지의 결과가 아니라 복지 삭감의 결과라는 사실 자체는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재정 구조 전체를 비판할 수는 있어도, 이번 시위의 원인을 “퍼주기”로 설명하는 것은 맞지 않다. 사설이 틀린 것은 분석의 정도 문제가 아니라 방향 자체의 문제다.


이 사설을 가장 선명하게 이해하는 방법은 그것이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프랑스 시위를 한국의 미래로 제시하는 사설을 쓴 시점은 이재명 정부가 예산 편성을 본격화하는 시기와 겹친다. 민생지원금 확대, 청년 주거 지원, 의료 공공성 강화 등 현 정부의 주요 지출 항목들이 야당과 보수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고 있는 맥락 위에 이 사설이 놓여 있다. 프랑스는 그 공격의 배경막으로 불려온 것이다.

복지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면 “그럼 노인들 굶기라는 거냐”, “청년들 포기하라는 거냐”는 반격이 온다. 그래서 보수 언론이 즐겨 쓰는 방법은 직접 반대하는 대신 해외의 실패 사례를 거울로 가져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비판은 우회하면서 불안은 심을 수 있다. 그리스가 그렇게 쓰였고, 베네수엘라가 그렇게 쓰였고, 이번엔 프랑스 차례다.

그리고 이 사설을 쓰는 신문이 최근 수년간 법인세 인하를 지지하고 금투세 폐지를 환영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재정 건전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세금을 깎는 방향에서는 조용해진다. 재원을 줄이면서 지출도 줄이라는 주장은 결국 국가의 역할 자체를 축소하라는 말이고, 그 결과 가장 먼저 타격받는 것은 시장이 돌보지 않는 영역의 사람들이다.

프랑스 학생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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