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일, 국민의힘은 서울역에서 숭례문까지 행진했다. 구호는 ‘사법 붕괴 저지’. 검찰청 폐지를 막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검찰청 폐지는 이미 이루어진 일이다.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수차례 공청회와 법사위 심의를 거쳤고, 국회 다수결로 통과됐다. 헌법재판소도 사법부도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없다. 절차적으로 흠잡을 구석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저들이 말하는 ‘사법 붕괴’는 무엇이 어떻게 붕괴됐다는 건가.
‘사법 붕괴’는 수사·기소 분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검찰이 쥐고 있던 직접 수사권 일부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경찰로 넘어가고, 기소 기능은 별도의 공소청 체계로 재편되는 것이 이 개혁의 골자다. 한 기관이 수사도 하고 기소도 결정하는 구조, 즉 ‘수사-기소 일원화’가 깨지는 것을 두고 야당은 붕괴라 부른다.
그런데 이 구조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우리는 이미 목격했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 검찰은 야당 대표를 겨냥한 수사를 동시다발로 진행했다. 수사 개시와 기소 결정을 같은 기관이 했고, 그 기관의 수장을 임명한 것은 당시 집권 여당이었다. 그 시절 국민의힘은 검찰 독립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검찰이 독립적으로 야당을 압박하는 동안 박수를 쳤다.
그 당이 이제 거리에 나와 검찰 조직 수호를 외친다.
반론을 먼저 꺼내겠다. 검찰 개혁의 방향 자체에 동의하더라도, 특정 정권 아래서 너무 빠르게, 너무 광범위하게 진행되는 것은 우려할 수 있다는 시각이 있다. 법조계 일부는 수사와 기소를 분리할 경우 증거 연속성 문제, 책임 소재 불분명 등을 실무적 위험으로 제기한다. 이 우려가 완전히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거리로 나온 이유가 그 실무적 우려 때문이라면, 그들이 해야 할 일은 국회 법사위에서 조문별 문제를 따지는 것이다. 공청회를 요구하고, 수정 발의를 하고,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 모든 절차는 이미 진행됐다. 야당은 그 과정에서 졌다. 다수결 민주주의에서 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의회에서 진 결과를 거리에서 뒤집으려는 시도는 다수결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다.
개천절을 택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나라가 열린 날’이라는 상징을 빌려, 현 정부의 개혁을 ‘나라를 닫는 행위’로 프레이밍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광장의 날짜는 항상 의미를 빌린다. 2016년 촛불도, 2017년 태극기 집회도 모두 상징적 날짜를 골랐다. 날짜를 고르는 것은 정치다. 그 정치가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공소취소 특검법 문제도 이 맥락에서 읽힌다. 검찰 권한 남용으로 피해를 입은 시민을 구제하기 위한 법안에 야당이 당론으로 반대했다. 검찰 개혁의 내용이 아니라, 과거 검찰 수사의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절차에 반대하는 것이다. 이 반대의 논리가 ‘법치주의 수호’라면, 그 법치주의는 기소권을 쥔 자의 편에서만 작동하는 법치주의다.
저항에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 명분은 자신이 피해를 입었을 때만 성립하지 않는다. 자신이 이전에 휘두른 권력의 복원을 요구하면서 그것을 민주주의 수호라 부를 수는 없다. 개천절 광장이 가득 찼다고 해서 그 주장이 다수의 것이 되지는 않는다. 검찰 개혁 지지 여론은 근 10년간 꾸준히 과반을 웃돌았다. 광장의 규모와 민심의 방향은 같지 않다.
국민의힘이 서울 한복판에서 검찰을 지키러 나온 그 날, 개천절의 의미는 역설적으로 선명해졌다. 나라를 처음 세운 날, 구권력의 복원을 요구하는 정당이 행진했다. 건국의 상징을 빌린 회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