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사설 분석] 소방·국방 처우 개선하려면 ‘현금 퍼주기’부터 중단하길

조선일보가 2025년 5월 사설에서 소방관 처우 문제를 꺼냈다. 제목은 그럴싸했다. 소방관이 겪는 열악한 현실을 나열하고, 국방 병사의 봉급 문제까지 얹었다. 그러더니 마지막 문단에서 방향이 꺾인다. 결론은 이거였다. “민생지원금 같은 현금 퍼주기부터 중단해야 재원이 생긴다.”

소방관을 방패로 내세워, 복지 지출 전반을 조준한 것이다.


소방 예산이 부족하다는 건 사실이다. 소방관 1인당 담당 인구는 OECD 평균의 두 배를 훌쩍 넘고, 순직·공상 비율은 매년 경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 문제를 꺼내는 것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그런데 조선일보 사설이 지적하지 않은 숫자가 있다. 소방 예산은 2020년 이후 36% 이상 증가했다. 절대 금액만 보면 늘었다. 그러나 그 증가분을 누가 부담했느냐를 들여다보면 그림이 달라진다. 국비 비율은 오히려 줄었고, 늘어난 예산의 상당 부분은 지방자치단체 몫으로 전가됐다. 재정 여력이 부족한 지자체일수록 소방 인력과 장비 투자가 뒤처지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건 예산 총량의 문제가 아니라 재원 구조의 문제다.

소방관 처우를 실질적으로 개선하려면 국비 전환 비율을 높이거나, 소방청 직할 운영 체계를 강화하거나, 인력 기준을 법제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이 논의는 국회에서 여러 차례 시도됐다. 조선일보 사설은 이 구조적 해법에 대해서는 한 줄도 쓰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에 ‘민생지원금’을 집어넣었다.


진단이 다르면 처방도 다르다

조선일보의 논리 구조를 따라가 보자. 소방관 처우가 열악하다 → 재원이 부족하다 → 민생지원금 같은 현금 지원을 중단하면 재원이 생긴다 → 따라서 복지 지출을 줄여야 한다.

얼핏 인과처럼 보이지만 각 단계에서 생략된 것들이 있다.

첫째, 소방 예산 부족이 민생 지원금 때문이라는 근거가 없다. 코로나 시기 재난지원금은 한시적 긴급 재정이었고, 소방 예산은 별도 항목으로 편성된다. 두 지출 항목이 직접적인 제로섬 관계에 있다는 건 예산 편성 방식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무시한 것이다.

둘째, ‘현금 퍼주기’라는 표현이 뭉뚱그린 범위를 보자. 코로나 재난지원금, 소상공인 손실보상, 민생지원금이 한 바구니에 담겼다. 그런데 소상공인 손실보상은 국가가 강제한 영업 제한에 대한 법적 보상이다. 이걸 ‘퍼주기’로 부르는 순간, 정부 정책에 따른 피해자에게 보상하는 행위 자체가 낭비가 된다. 사설은 그 지원 없이 버텼을 자영업자가 몇이나 됐을지는 묻지 않는다.

셋째, 소방 예산 국비 전환과 민생 지원은 선택지가 아니다. 둘은 동시에 추진할 수 있는 정책이다. 복지 예산을 깎아야 소방에 쓸 돈이 생긴다는 전제 자체가 허구의 제약이다. 조세 구조를 손보거나, 국방·SOC 예산 배분을 조정하거나, 지방 교부세 산정 방식을 바꾸는 접근도 있다. 사설은 그 선택지들을 모두 지운 뒤 복지 대 소방이라는 이분법만 남겨뒀다.


이런 구조가 낯설지 않은 이유가 있다. 조선일보는 오랫동안 복지 지출을 ‘포퓰리즘’과 동의어로 사용해왔다. 소방관이 오늘의 소재였을 뿐, 같은 논리 틀은 의료급여 확대 때도, 기초연금 인상 때도, 무상급식 논쟁 때도 반복됐다.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도입부에 배치하고, 그것을 복지 삭감의 근거로 역전시키는 방식이다.

이번 사설이 특히 눈에 띄는 건 소방관이라는 소재의 선택이다. 소방관은 정치적으로 공격하기 어려운 직군이다. 누구도 소방관 처우 개선에 반대하기 힘들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소재가 복지 지출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기능할 때 반박이 어렵게 설계된다. ‘소방관 처우 개선에 동의하느냐’는 질문과 ‘민생지원금을 없애야 하느냐’는 질문은 전혀 다른 질문인데, 사설 구조 안에서 그 둘이 연결된 것처럼 배치된 것이다.


소방관 처우를 진심으로 걱정한다면, 지금 국회에서 계류 중인 소방공무원 국가직 처우 관련 입법에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를 보면 된다. 소방 예산의 국비 전환 비율을 법으로 못 박자는 논의에 손을 들었는지를 보면 된다. 언론사라면 그 법안의 통과를 촉구하는 사설을 먼저 썼어야 했다.

복지를 줄이면 소방이 산다는 논리는 구조를 바꾸는 주장이 아니다. 지출 항목 하나를 다른 것에 맞세워 둘 다 의심하게 만드는 논리다. 소방관은 그 싸움의 당사자가 아닌데, 사설은 그를 최전선에 내세웠다.

소방관을 방패로 쓰면서 소방관을 위한다고 말하는 것, 그게 이 사설의 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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