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사설 분석] 與 후보 회피 토론, 심야에 한 번 하고 7시간 뒤 투표
**조선일보가 ‘토론 회피’를 비판했다. 근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팩트부터 깔고 가자
2025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유권자가 두 후보의 정책과 비전을 비교할 수 있는 공식 TV 토론은 단 한 차례였다. 그것도 밤 11시에 편성됐다. 사전투표 시작까지 불과 7시간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숫자가 말해주고 있다. 단 1회. 심야 11시. 투표 7시간 전.
어떤 민주주의 선거에서도 이 토론 환경을 ‘충분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 점만큼은 조선일보의 사설이 건드린 문제의식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토론이 너무 적었고, 편성 시간도 너무 늦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이 상황의 책임을 민주당 정원오 후보 쪽에 집중시켰다. 사설의 논지는 명확했다: 야당 후보가 토론을 회피했기 때문에 이 지경이 됐다.
여기서 블런트엣지는 질문을 하나 던진다. 과연 그게 전부인가?
조선일보 사설, 이 프레임은 어디서 왔나
조선일보 사설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전형적인 패턴이 보인다. 실제로 존재하는 문제(토론 부족)를 도입부에 배치하고, 그 책임의 화살을 특정 방향으로만 겨냥한다. 이걸 ‘편집된 분노’라고 부를 수 있다.
그렇다면 오세훈 후보 측의 행동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팩트를 추가로 깔자. 오세훈 측은 이번 선거 과정에서 ‘GTX 철근 누락’ 쟁점이 부각되자, ‘양자 토론’을 따로 제안했다. 표면적으로는 더 많은 토론을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근데 이걸 번역하면 이렇다: “내가 유리한 판을 내가 직접 짜겠다.”
현직 시장이 단독으로 특정 의제에 대한 맞춤형 토론을 제안하는 건, 적극적 소통 의지가 아니라 선택적 방어 전략에 가깝다. 4년의 시정 전반을 종합적으로 검증받는 자리를 피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단일 이슈 토론만 하겠다는 구도는, 소통의 확대가 아니라 의제의 통제다.
현직 시장이 자신의 4년 치 시정 기록을 공개적으로, 다각도로 검증받고 싶지 않을 이유는 충분히 이해된다. 문제는, 조선일보가 이 맥락을 사설에서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야 편성, 정말 야당 탓인가
밤 11시 편성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선거 토론의 방송 시간대는 야당 후보 혼자 결정하는 게 아니다. 방송사의 편성 논리, 광고 수익 구조, 후보 간 협의, 선관위의 조율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심야 편성이 나온 건 이 구조의 결과물이지, 단일 후보의 ‘회피’ 의지만으로 만들어진 그림이 아니다.
그런데도 조선일보 사설은 심야 편성 문제를 야당의 토론 기피 행태와 연결하는 서술 방식을 택했다. 논리적 연결고리를 명시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으면서, 독자가 인과관계를 자연스럽게 연상하도록 배치하는 방식이다. 이건 논리 비약이 아니라, 논리 비약을 보이지 않게 설계한 편집이다.
BluntEdge 관점: 조선일보가 분노한 진짜 이유
여기서 핵심은 딱 하나다.
조선일보가 이 사설을 쓴 건, 민주주의적 토론 문화를 걱정해서가 아니다. 자기들이 지지하는 후보가 충분히 유리한 조건에서 토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건 과거 패턴을 보면 더 명확해진다. 조선일보는 보수 후보가 토론에서 우위를 점했을 때 ‘유권자의 현명한 판단’을 이야기하고, 수세에 몰렸을 때 ‘토론 구조의 불공정’이나 ‘야당의 회피’를 이야기한다. 토론 제도 강화에 대한 일관된 관심이 아니라, 결과에 따라 달라지는 사후적 해석이다.
만약 조선일보가 진짜로 토론 제도를 걱정했다면, 이 사설은 달라야 했다. 방송사의 심야 편성 관행을 비판했어야 하고, 선관위의 토론 의무화 제도가 왜 허술한지를 따져야 했고, 오세훈 측의 선택적 토론 제안도 같은 잣대로 분석했어야 한다.
그 중 어느 것도 사설에는 없었다.
그렇다면 토론 제도, 어떻게 봐야 하나
토론 횟수가 적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토론이 심야에 편성됐다는 사실은 분명히 비판받아야 한다. 유권자의 알 권리는 선거 제도의 핵심이고, 공개 토론은 그 권리를 실현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다.
그러나 이 문제의 해법은 특정 후보를 향한 손가락질이 아니라 구조적 개선이어야 한다. 중앙선관위가 후보 간 합의와 관계없이 일정 횟수 이상의 공개 토론을 의무화하고, 방송사의 편성 시간대에도 최소한의 기준을 두는 방향이 맞다. 이건 여당이든 야당이든, 현직이든 도전자든,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
조선일보가 정말로 그걸 원한다면, 다음 선거에서도, 보수 후보가 출마한 선거에서도,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결론
토론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맞다. 근데 그 칼이 항상 같은 방향만 향한다면, 그건 원칙이 아니라 도구다.
조선일보의 사설은 맞는 문제를 틀린 프레임으로 포장했다. 그리고 그 프레임 안에서 오세훈 측의 선택적 토론 제안은 투명하게 지워졌다.
유권자가 토론을 볼 권리를 침해한 건 어느 한 후보가 아니라, 이 구조 전체다. 그리고 그 구조를 편의에 따라 해석하는 언론도 그 공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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