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사설 분석] 전작권 전환, 안보 역량·동맹 신뢰가 관건이다 [

[중앙일보 사설 분석] 전작권 전환, 안보 역량·동맹 신뢰가 관건이다

*”성급하다”는 말이 20년을 관통한다. 도대체 언제가 성급하지 않은 건가.*


팩트부터 깔고 가자

전시작전통제권, 줄여서 전작권. 이게 뭔지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이 문제가 얼마나 오래된 건지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연도별 타임라인을 정리해보자.

  • **2003~2007년 노무현 정부:** 전작권 전환 협상 본격 시작. 2012년 전환을 목표로 미국과 합의.
  • **2010년 이명박 정부:** “안보 상황이 불안하다”며 2015년으로 연기.
  • **2014년 박근혜 정부:** 또다시 “조건에 기반한 전환”으로 재합의. 사실상 기한 없는 연기.
  • **2017~2022년 문재인 정부:** 전환 조건 검증 착수. 초기운용능력(IOC) 평가 완료.
  • **2025년 현재:**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전환 논의 재가동.
  • 숫자가 말해주고 있다. 2003년에 시작해서 2025년이다. 22년이다. 이걸 “성급하다”고 부를 수 있는 언론이 있다는 게 오히려 놀랍다.

    현재 전작권은 한미연합사령부 체계 아래 미군 4성 장군이 쥐고 있다. 전시 상황에서 한국군은 한국 대통령의 지휘가 아니라 연합사 체계에 귀속된다. 이건 동맹의 협력 구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주권 국가로서 명백한 제약이기도 하다. 세계 군사력 5~6위권, GDP 세계 13위 국가가 자국 군대의 전시 작전권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이 사실 하나만 두고 보면 이게 정상적인 상태인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 그 프레임을 해부한다

    중앙일보 사설의 제목은 “전작권 전환, 안보 역량·동맹 신뢰가 관건이다”다. 제목만 보면 매우 합리적으로 보인다. 누가 안보 역량과 동맹 신뢰가 중요하지 않다고 하겠는가.

    그런데 사설이 실제로 하는 일은 따로 있다.

    첫째, 미군 사령관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미국이 우려한다”는 뉘앙스를 반복한다. 독자는 자연스럽게 “미국이 반대하고 있구나”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런데 실제 미군 사령관의 발언 맥락은 전환 자체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조건 충족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 둘은 전혀 다른 말이다.

    이걸 번역하면 이렇다: “나는 네가 시험을 잘 봐야 한다고 생각해”라는 말을 “나는 네가 시험 보는 걸 반대해”로 요약하는 것. 사실관계를 틀리지 않으면서도 인상을 왜곡하는, 보수 언론이 즐겨 쓰는 방식이다.

    둘째, 사설은 전작권 전환을 추진하는 정부의 입장을 “정치적 의욕”이라고 표현한다. 이 단어 선택이 핵심이다. ‘의욕’은 ‘무모함’과 한 끗 차이다. 정치적 의욕이라는 프레임은 “전문적 판단 없이 정치적 동기로 밀어붙이는 것”이라는 인상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묻겠다. 22년 동안 ‘조건이 안 됐다’며 연기해온 건 정치적 판단이 아닌가. 연기의 결정도 정치였고, 추진의 결정도 정치다. 왜 한쪽만 “정치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가.

    셋째, 사설은 “동맹 신뢰”를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물론 동맹 신뢰는 중요하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은 딱 하나다. 전작권 전환이 동맹을 약화시키는가, 아니면 동맹의 질적 변화를 의미하는가. 전작권이 전환되면 한국군이 주도하고 미군이 지원하는 새로운 연합 체계로 전환된다. 이건 동맹의 해체가 아니라 동맹의 재편이다. 미국도 이 원칙 자체를 부정한 적은 없다. 사설은 이 구분을 의도적으로 뭉갠다.

    여기서 핵심은 딱 하나다. 중앙일보 사설의 논리 구조는 “지금은 아니다”다. 그런데 언제가 ‘지금’이 되는지에 대한 구체적 답은 없다. 조건을 충족하면? 그 조건의 기준은 누가 정하고, 누가 판단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조건 충족론”은 사실상 영구 연기론과 구별되지 않는다.


    BluntEdge 관점: 주권 회복은 ‘의욕’이 아니다

    나는 전작권 전환이 당장 내일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안보는 냉철해야 하고, 전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공백은 철저하게 관리돼야 한다. 그 부분에서 절차와 조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는 충분히 경청할 수 있다.

    그러나 근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논리가 22년 동안 반복됐다는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도, 박근혜 정부도, 매번 같은 말을 했다. ‘아직 안 됐다, 상황이 불안하다, 동맹이 우선이다.’ 그 결과가 지금이다. 그리고 지금 또 같은 말이 나오고 있다.

    이 맥락에서 “성급하다”는 표현이 얼마나 무책임한 언어인지 드러난다. 22년을 기다렸는데 성급하다고? 그렇다면 몇 년을 더 기다려야 성급하지 않은 건가. 그 기준을 제시하지 않는 “성급하다”는 말은, 사실상 “하지 마라”는 말이다.

    더 넓게 보자. 자국 군대의 전시 작전권을 갖는 것은 현대 주권 국가의 기본 요건에 가깝다. NATO 동맹국들 중에 전시에 자국 군대의 작전권을 타국 장성에게 위임하는 나라가 있는가. 한국의 상황은 6·25 전쟁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 맥락이 영구히 한국의 주권을 제한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보수 언론은 안보를 말할 때 항상 “냉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주권 회복의 문제에는 왜 그 냉철함이 적용되지 않는가. 냉철한 시각으로 보면, 22년을 끌어온 건 의욕이 넘쳐서가 아니라 의지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의지 없음’이 정치적으로 누구에게 유리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전작권 전환을 둘러싼 논의에서 보수 언론이 수행하는 역할은 일관된다. 추진할 때는 “성급하다”, 연기할 때는 “신중하다”. 프레임이 뒤집힌 적이 없다. 이 패턴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입장이다. 그걸 객관적 안보 분석인 척 포장하는 것이 문제다.

    나는 전작권 전환의 속도와 방식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지지한다. 조건 검증, 한미 협의, 전환 이후 연합 체계 설계 — 이 모든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 토론의 출발점은 “주권 회복이 목표”라는 전제 위에 서야 한다. “미국이 불편해한다”는 불안감 위에 서면 안 된다.


    한 줄 결론

    **전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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