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을 벤다] 좌아하게부터 정청래 만찬까지… ‘이재명다움’으로 승부수 던진 대통령

이재명 대통령이 X(구 트위터)에 올린 게시물이 취임 후 991건을 넘어섰다. 9월 한 달에만 129건이다. 하루 평균 네 건꼴이다. 중수청장 후보 논란이 불거졌을 때는 사흘 연속 직접 개입했고, 정청래 전 대표와는 4시간짜리 만찬을 함께했다. 보수 언론은 이 수치들을 나란히 늘어놓으며 ‘과잉 노출’이라는 결론을 미리 써놓고 기사를 역순으로 쌓아 올렸다. 숫자가 많다는 것 자체가 문제의 증거인 것처럼.

그런데 그 프레임이 설정하는 전제를 한 번 따져봐야 한다. 대통령이 자주 말하면 왜 나쁜가?


솔직히 말하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그게 이재명의 방식이고, 실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지만 대통령은 후보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나는 두 주장 모두를 진지하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 순서를 잘 따져야 한다.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이 여기까지 온 방식을 떠올려보라. 그는 전통적인 관료형 정치 문법을 한 번도 내면화한 적이 없다. 성남시장 시절에도 그랬고, 경기도지사 시절에도 그랬다. 논란이 생기면 우회하지 않고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비판이 들어오면 측근을 내보내는 대신 본인이 나섰다. 이 방식은 분명히 효율적이지 않다. 그러나 효과적이었다. 지지층은 그 직접성을 신뢰의 언어로 읽었고, 반대편은 그것을 무모함으로 읽었다. 어느 쪽 해석이 맞느냐와 무관하게, 그 스타일이 그를 대통령 자리까지 데려다 놓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취임 후의 X 게시물 991건을 보고 “자중해야 한다”고 충고하는 것은, 마치 “당신이 너무 당신다워서 탈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정치적 정체성을 바꾸라는 요구는 지지 철회 선언과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러나 반론은 여기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 반론은 무시해서는 안 된다.

후보는 자신이 유일한 실행 주체여도 된다. 캠프의 모든 메시지가 후보 한 사람에게 수렴하는 것은 선거 전략상 합리적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다르다. 국정은 한 사람의 판단력과 에너지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시스템이 작동해야 하고, 각 부처와 제도가 자율적 신뢰를 얻어야 한다. 김지용 중수청장 후보 논란에서 대통령이 사흘 연속 직접 개입했다는 사실은, 뒤집어 보면 그 과정에서 다른 누가 완충재 역할을 맡았어야 하는데 하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불이 났을 때 소방청장 대신 대통령이 직접 호스를 든다면, 그것이 리더십의 증거인지 시스템 부재의 증거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그리고 정청래 전 대표와의 4시간 만찬은 또 다른 층위의 문제를 짚는다. 이것이 단순한 개인적 유대의 표현인지, 당내 갈등 관리의 일환인지, 아니면 특정 계파에 대한 신호인지를 외부에서 명확히 읽을 수 없다는 점이 문제다. 투명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개인화되어 있어서, 그 행위의 정치적 의미를 제도적 맥락으로 해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재명식 직접 정치의 약점은 ‘과잉 노출’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이 개인에게 귀속된다’는 구조다.


지지율 하락세가 멈췄다는 최근 흐름은 긍정적인 신호다. 그러나 이것이 이재명식 직접 소통의 성과인지, 야당의 자멸인지, 아니면 단순한 등락의 바닥 확인인지는 아직 가려지지 않았다. 보수 언론이 이 수치를 ‘반등 실패’로 읽는 것은 분명한 프레임 조작이지만, 민주당 지지층이 이것을 ‘성공 신호’로 선언하는 것도 섣부르다.

중요한 것은 이 시점에서 무엇이 안 보이는가를 묻는 것이다.

대통령이 자주 보일수록, 그 뒤의 시스템은 보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국정 수행에서 각 부처 장관들의 발언과 결정이 독자적인 무게로 언론에 다뤄진 적이 얼마나 있나. 대통령의 X 게시물 한 줄이 장관의 공식 브리핑보다 더 많은 정치적 신호를 담고 있다고 대중이 느낀다면, 그것은 단기적으로는 효과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취약한 구조다. 대통령 개인의 판단에 모든 것이 걸리는 체제는, 그 판단이 한 번 흔들릴 때 대안이 없다.

이재명다움은 분명 정치적 자산이다. 그 자산을 부정할 이유도 없고, 부정해서도 안 된다. 다만 자산과 전략은 다르다. 어떤 무기를 갖고 있느냐와, 어떤 상황에서 그 무기를 꺼내느냐는 별개의 질문이다. 지금 이재명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국정이 굴러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그 장면들이 축적될 때, ‘이재명다움’은 개인의 스타일이 아니라 국정 운영의 방법론으로 승격된다.

지금은 아직 그 경계선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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