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 한 줄] 김정은 사망?

2020년 4월, 전 세계 언론이 북한 체제의 붕괴 가능성을 반쯤 기정사실처럼 다뤘다. CNN은 “김정은이 심혈관 수술 후 중태”라고 보도했고, 한국 일부 매체들은 “식물인간”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그로부터 20여 일 뒤, 김정은은 비료 공장 준공식에 멀쩡히 나타났다. 당시 보도들은 어디로 갔는가. 조용히 사라졌다. 정정 보도나 사과 없이.

지금, 그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이번에 다시 “김정은 사망” 루머가 부상하는 과정을 보면 구조가 익숙하다. 출처가 불분명한 SNS 게시물이 먼저 돌고, 그걸 일부 유튜브 채널이 “긴급”이라는 딱지를 붙여 증폭한다. 그다음엔 보수 성향 매체들이 “소식통에 따르면”이라는 단서를 달고 받아쓴다. 그렇게 루머는 뉴스의 외양을 입는다.

현재 확인된 것은 없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은 김정은 관련 이상 보도를 내지 않았다. 한국 국가정보원 역시 공식적으로 “특이 동향 없음”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정보 당국이 이 정도 사안에서 침묵을 선택한다는 것은, 확인된 내용이 없다는 뜻이다.

검증이 불가능한 구조를 이용하는 사람들

북한을 “정보의 블랙홀”이라고 부르는 것은 비유가 아니다. 주민들의 해외 접촉이 원천 차단되고, 외신 기자의 자유로운 취재가 불가능하며, 탈북민 정보는 시차와 경로가 불분명하다. 이 구조 안에서 최고 지도자의 건강 상태는 외부에서 진위를 확인할 방법이 근본적으로 없다.

문제는 이 불가능성이 루머를 죽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키운다는 점이다. 반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주장이 살아남는다. 2020년의 “중태설”이 몇 주를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누구도 “거짓”을 확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반증이 불가능한 주장은 반박이 불가능한 주장처럼 보인다. 이 인식론적 함정이 반복 소비의 핵심 엔진이다.

반론을 하나 상정해보자. “그래도 혹시 모르지 않느냐. 사실일 수도 있지 않느냐.” 맞다, 가능성은 0이 아니다. 김정은은 건강 문제가 지속적으로 거론되는 인물이고, 그의 갑작스러운 사망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 반론이 성립하려면 동시에 인정해야 할 것이 있다. 그 논리라면 지금 이 순간 지구상의 어떤 권위주의 국가 지도자에 대해서도 동일한 루머를 퍼뜨릴 근거가 된다는 것. “확인이 안 됐다”는 것은 보도의 근거가 아니라, 보도를 보류해야 할 이유다.


그렇다면 왜 이 루머는 특정 시점마다, 특정 매체를 통해 반복 증폭되는가.

한국 정치 지형에서 대북 긴장감은 언제나 보수 진영에 유리하게 작동해왔다. 안보 위기감이 높아질수록 “강한 안보”를 내세우는 진영이 존재감을 얻는다. 이것은 음모론이 아니라 지난 수십 년간 반복 확인된 정치 역학이다. 남북 관계가 경색될수록, 북한 관련 불안 보도가 많아질수록, 보수 정치세력은 프레임 면에서 이득을 본다.

지금 국민의힘이 야당으로서 실질적인 정책 대안보다 이재명 정부를 향한 공세에 집중하는 시기라는 점도 이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국내 정치 어젠다가 불리하게 돌아가는 국면에서 대북 이슈는 물타기의 기능을 한다. 의도적 기획이냐 자연발생적 편승이냐를 따지기 이전에, 결과적으로 누가 이득을 보는지를 보면 된다.

루머를 소비하는 순간, 누군가의 의도에 올라탄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상당수는 이미 어디선가 이 소문을 접하고 왔을 것이다. 카카오톡 단체방일 수도 있고, 유튜브 알고리즘이 띄운 영상일 수도 있다. 그 접점이 어디든 공통점이 있다. 출처가 불분명하고, 단정적이며, 긴급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 긴급함 자체가 설계된 것이다.

미확인 정보를 클릭하고, 공유하고, 댓글로 반응하는 행위는 단순한 관심 표현이 아니다. 알고리즘에 신호를 주고, 루머의 생명을 연장하며, 그 정보를 최초 유통한 매체와 채널에 수익과 영향력을 제공한다. 소비 자체가 이미 기여다.

2020년의 교훈은 간단하다. 20일 넘게 전 세계 언론이 떠들었지만, 김정은은 살아서 돌아왔다. 그 보도들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피해는 고스란히 독자들의 판단력이 입었다. 한번 자극적 루머에 익숙해진 감각은, 다음번에 더 쉽게 낚인다.

지금 이 루머를 공유하기 전에 물어봐야 할 것은 “이게 사실일까”가 아니다. “이걸 공유하면 누가 이득을 보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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