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성과급을 ‘숟가락 싸움’이라 부른 이유

조선일보가 성과급을 ‘숟가락 싸움’이라 부른 이유

“위기 앞에서 사이좋게 나눠야 한다.”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근데 잠깐, 누가 위기를 만들었고, 누가 위기를 견뎠는가?


팩트부터 깔고 가자

조선일보는 최근 사설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직원들의 성과급 논의를 가리켜 사실상 ‘숟가락 싸움’에 비유했다. 반도체 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위기에 처했는데, 안에서는 성과급 타령이냐는 논조였다.

팩트부터 확인하자.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DS부문)은 2023년 한 해 동안 약 14조 원대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SK하이닉스 역시 2023년 연간 기준 대규모 적자에서 출발해 2024년에야 HBM(고대역폭 메모리) 수요 급증에 힘입어 반등했다. 숫자만 보면 조선일보 논리가 그럴듯해 보인다. 적자인데 성과급이 웬 말이냐고.

그런데 같은 기간 그 라인을 지킨 사람들이 누구였는가. 반도체 제조 공정은 가동을 멈추면 재가동에 수개월과 천억 단위 비용이 든다. 적자가 나도 라인을 돌리고, 수율을 유지하고, 기술 연속성을 보존한 것은 현장 엔지니어들이었다. 그들이 지금 묻고 있는 건 “우리 몫은 어디 있냐”는 것이다. 이걸 ‘숟가락 싸움’이라고 부르는 건,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병사에게 “밥값은 했냐”고 묻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설이 빠뜨린 것들

여기서 핵심은 딱 하나다. 이 사설이 무엇을 말했냐가 아니라, 무엇을 말하지 않았냐다.

첫째, 한국 정부의 반도체 세액공제 축소다.

미국은 2022년 반도체지원법(CHIPS Act)으로 반도체 기업에 투자액의 최대 25%를 세액공제해 주기 시작했다. 같은 시기 한국 정부는 어땠나. 반도체 설비 투자 세액공제율을 두고 논란이 이어졌고, 상향 논의가 지지부진한 사이 기업들은 해외 투자로 눈을 돌렸다. 조선일보 사설은 “기업이 투자해야 살아남는다”고 강조했지만, 왜 기업 투자가 위축되었는지, 정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한 줄도 없다. 투자 위기의 원인을 노동자 보상 수준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둘째, TSMC와 대만 정부의 관계다.

사설은 TSMC 성과급 삭감 가능성을 언급하며 글로벌 경쟁 압박을 강조했다. 이걸 번역하면 이렇다: “대만도 힘든데 한국 직원들이 성과급 요구하는 건 과한 거 아니냐.” 그런데 대만 정부가 TSMC에 쏟아붓는 보조금과 전력·용수 인프라 지원, 국가 차원의 인재 육성 투자는 이 사설에 존재하지 않는다. TSMC가 강한 이유의 절반은 대만 국가가 만들어준 조건이다. 그 조건을 빼놓고 “TSMC도 허리띠 조이는데”라고 하는 건, 한쪽 면만 보여주는 거울이다.

셋째, 메타 감원의 맥락도 뒤집혔다.

사설은 메타가 AI 투자를 위해 감원을 단행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논리를 깔았다. 그런데 메타 감원의 핵심은 팬데믹 시기 과잉채용에 대한 정리였고, 이후 메타는 오히려 AI 투자를 대폭 늘리고 있다. 즉, 메타의 감원은 비용 절감을 위한 노동 억압이 아니라 전략적 포트폴리오 재편이었다. 이 맥락을 지우고 “글로벌 기업도 다 허리 졸라맨다”로 만드는 건 사실의 선택적 편집이다.


BluntEdge 관점: 이 사설의 설계도

근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조선일보 사설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논리의 흐름이 뚜렷하다.

1. 글로벌 위기론을 전면에 배치한다 — TSMC, 메타, 반도체 사이클 침체.

2. 노동자 보상 요구를 위기와 충돌시킨다 — “이 상황에 성과급?”

3. 기업 투자 확대를 당위로 만든다 — “살아남으려면 투자해야 한다.”

4. 노동자 양보를 자연스러운 귀결로 유도한다 — “다 함께 참아야 한다.”

이 구조에서 정책 실패, 정부 책임, 자본 배분의 문제는 애초에 들어갈 자리가 없다. 위기의 원인을 노동자에게 돌리고, 해법도 노동자에게 돌리는 회로다.

숫자가 말해주고 있다. 삼성전자 DS부문이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던 2023년, 이재용 회장을 포함한 임원진의 보수 총액은 줄었지만, 그 구조 자체를 문제 삼는 사설은 없었다. 주주 배당이 어떻게 유지되었는지를 묻는 사설도 없었다. 오직 현장 직원의 성과급만이 ‘숟가락 싸움’이라는 프레임을 얻었다.

이것이 바로 보수 언론이 ‘경제 위기론’을 쓰는 방식이다. 위기는 항상 아래를 향하고, 해법도 항상 아래를 향한다. 위를 향하는 질문은 처음부터 설계도에 없다.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은 진짜 중요한 문제다. HBM에서 SK하이닉스가 앞서 나간 것, 삼성이 추격전을 벌이는 것, 중국의 추격이 가속화되는 것, 전력 인프라와 설계 인력의 부족 — 이 모든 것은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사안이다. 그런데 그 논의의 출발점이 “직원들이 너무 많이 가져가는 것 아니냐”여서는 안 된다.

승자독식 시장에서 지는 건 투자 부족 때문이 아니다. 전략 부재와 정책 실패 때문이다. 라인을 지킨 사람들에게 숟가락 싸움 말라고 할 게 아니라, 판 자체를 잘못 짠 사람들에게 물어야 한다.


한 줄 결론

위기를 만든 건 정책이고, 위기를 견딘 건 노동자다 — 그 둘을 뒤바꾸는 게 이 사설의 유일한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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